April 22nd, 2008
어떤 싸움의 記錄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꺽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 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
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작은누나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 테야
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 테야
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 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라일락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번 소리 질렀다
이 동네는 法도 없는 동네냐 法도 없어 法도 그러나
나의 팔은 罪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市場에서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門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
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
(이성복, 全文)
***
오학년이던 해 가을이었다. 외갓집의 망나니였던 외삼촌이 어떤 아저씨를 데리고 우리집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아저씨는 외삼촌의 사촌형, 그러니까 엄마 형제들의 사촌이었다. 그 작자는 언제나 술에 찌들어 살고 불량하고 거친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아직 젊어 혈기왕성한 외삼촌은 그 사촌형을 잘 본받아서 판단과 행동을 대부분 그 작자에게 의존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그날 모종의 ‘행동’을 작심하고 찾아왔었나. 초저녁이었고 술상이 차려져 술잔들이 몇 순배 돌아갔다. 술좌석의 시끄러운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우리는 옆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한참 지나서 어른들 이야기가 험하게 오고 가면서 고함 소리가 터졌다. 술상이 뒤엎어지고 방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악쓰는 소리, 욕하는 소리가 뒤섞이고 엉망이 된 좁은 방안에서 모두 일어나 주먹다짐과 몸싸움이 벌어졌고, 곧 미닫이 창호문은 발길질에 뜯겨 쓰러지고 다들 마당으로 나뒹굴었다. 방바닥이며 마당의 시멘트바닥에는 피가 떨어졌다. 누군가 피투성이가 된 듯했다. 아버지의 이마 왼쪽에서 흐르는 피가 눈에 들어왔다. 순하던 아버지도 무척 취해서 두 사람과 일대이로 싸웠다. 마당에는 물 담아놓고 쓰던 드럼통이 있었는데, 누군가 그 나무덮개을 들고 휘두르고 집어던졌다. 엄마와 함께 그들을 말리고 있던 큰 누나가 격앙된 목소리로, 파출소 가서 순경을 불러오라고 나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맨발로 숨이 차도록 뛰었다. 큰 길가에서 늘 보았던 파출소까지 득달같이 달렸다. 들어가자마자 허겁지겁 누군가한테 외쳤다. “싸움이 났어요. 아버지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고 있어요.” 그들은 누구랑 싸우느냐고 물었고, 삼촌하고 싸운다는 내 말에 낄낄대면서 그건 집안 싸움이 아니냐고 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서로들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렇게 한참 뜸을 들이고나서야 귀찮아 죽겠다는 듯 마지못해 둘이 일어나 모자를 쓰고 내 등을 돌려 세워 백차에 태우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우리집으로 향했고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방향을 일러주었다.
그때부터 나와 나의 형제들은 그 망나니 외삼촌을 더 이상 ‘외삼촌’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렀으며, 술버릇 나쁜 사람을 증오했다. 동생과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그 놈이 다시 우리집에 와서 깽판을 부리면 때려죽이겠다고 오랜 세월 별렀다.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엄마한테서 그 외삼촌의 사촌형이란 작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고, 우리집에 얼씬도 못하던 외삼촌은 오랜 세월 알콜중독으로 외할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내가 대학생이었던 언젠가 이미 알콜중독 말기로 숯처럼 검은 얼굴을 하고 우리집에 와서는 나를 보며 오랜만이라고 웃으며 반가워했다. 알콜 때문에 숯처럼 타버린 그 얼굴을 보면서 그토록 오래 증오했던 마음은 사라졌고 그의 인생이 불쌍해졌다. 얼마 뒤에 그도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남기고 외할머니보다 먼저 죽었다. 아버지는 그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음에도 더 오래 살다가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
Tags: 맨발, 순경, 술, 싸움, 알콜중독, 외삼촌, 증오, 추억, 피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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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6th, 2008
불멸
겸손은 아마 내 천성
그걸 그러나 스스로는 모르는 체
나는 항상 반쯤 드러내며 살아왔다
내가 가진 것의 반
또는 그보다도 적게.
모든 걸 아는 풀잎
모든 걸 아는 저 새들
모든 걸 아는 동물들
그리고 해와 달
만물이 항상
자기를 반쯤 드러내고 있듯이
나는 반쯤 드러내며 살고 있다
언제까지나
장차 내가 죽었을 때에도
그건 나를 반쯤 드러낸 모습일 터이니
그건 실로 죽은 게 아닐 것이다
나는 불멸이다.
(정현종, 全文)
***
열어놓은 창 밖에서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저 달도 내가 불멸임을 안단다. 밤마다 울어대는 개구리들도, 날씨가 따듯해지니 방안 구석구석에서 출몰하는 그리마들도, 부엌에서 날아다니다 파리채에 얻어맞아 죽어가는 파리도, 이틀에 한번씩 불어제끼는 골짜기 바람도, 물앵두나무 가지에서 트는 새 움도, 점심상에 올라온 뒤꼍의 나물도, 늦은 오후 허공에 떼지어 우글대는 하루살이들도, 쓰레기 태우고 바람에 날리는 재도, 오늘 다섯 통이나 떠온 샘물도, 희희낙낙하는 아이들의 얼굴도, 내가 불멸임을 안단다.
그래,
나도 안다, 내가
불멸임을.
Tags: 겸손, 달, 동물, 불멸, 식물, 절반의 모습,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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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8th, 2008
문화로서의 사치는 ‘인간’과 ‘인간적 삶’의 디자인이자, 계속 갱신되는 발명이다. 조악한 디자인의 삶은 그 자체가 징역이요, 고도로 섬세한 디자인의 삶은 그 자체가 축복이 되겠다. 불행하게도, 그 디자인을 판별해주는 심판관을 어디에서도 만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좋은 디자인을 볼 줄 아는 안목에 이르렀다면, 그 안목 즉 섬세한 사유의 사치는 이미 그 사치 자체가 최상의 축복이다.
그리고, 그 불행과 다행이 순환하지 않으니, 이 또한 지고의 축복이 아니겠는가.
Tags: 문화, 사치, 섬세한 사유, 인간의 발명,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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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5th, 2008
교육은 그렇게 사람들이 서로서로 ‘받아먹는’ 게 많게끔 만든다. 공모의 기술이다. 매체환경의 최면술도 마찬가지다. 공모를 하게끔 하고 공범자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홀로움’을 위한 저항으로서의 교육은 무교육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이반 일리히에 가까이 간다. 교육은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의존성을 높여 간다.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이제 내가 나인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관계맺고 있는 타자의 시선이 규정하는 ‘지점’이 되어간다. 나는 이제 주체가 아니라 지점이 된다. 그 지점을 향한 맹목적 질주가 주류사회의 에티켓이다. 세상에 관여하지 않기. 여기서의 세상이란 날것으로서의 인간, 그들의 세상이 아니다. 인간을 추상적 교환가치와 계량적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세상이다. 하나씩 하나씩 버려보자. 제대로 하려면 결국 근본주의가 필요하다. 모든 근본주의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버리는 근본주의’가 필요한 것이지, ‘다 갖는’ 근본주의가 아니다. 버리는 근본주의의 목적은 ‘날것’들의 자주적 독립이다. 날것이라고 하여 문화를 벗어난 야생의 인간이 목적인 것은 아니다. ‘문화를 뛰어넘는’ 야생의 인간이라면 좋겠구나. 우리는 그런 버리는 근본주의를 권정생 선생이나 간디에서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였다지만, 니체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진짜 ‘동물’이 된다고 한다. 밧줄이라고 하지 않던가. 오히려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실존적 깊이를 가진 ‘날것’으로서. 그러나 그 개인됨의 형식을 준 것은 ‘관계맺음’이다. 적이 이제 우군이 되어버린다. 나를 지점으로 묶어온 관계가 바람에 날려 휘발된 그 자리, 그 곳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날것도 없다. 날것이 되기 위한 해방의 에너지는 양방향으로 흐르고, 역방향을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더불어-관계맺음은 홀로움에서 비롯되며 홀로움은 더불어-관계맺음에서 파생된다. 이 둘은 서로를 먹여살리는 관계인 것이다. 이 모순이 눈부시다.
Tags: 관계맺음, 근본주의, 날것, 무교육, 이반 일리히, 홀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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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4th, 2008
유목과 은둔
의리(義理)가
낮은 샘가에 피묻은 채 머물고
온 허공에 수만 가지 꽃, 꽃들이
어지러이 피어
어찌 나갈까
저 먼 쓸쓸한 바다까지
가 마침내 내 두 아이를
만나 기어이
데리고 돌아올까
유목과 은둔의 집이여
오랜 내 새 집에.
( 김지하, 全文)
***
물론, 나의 <은둔과 유목>이, 김지하의 <유목과 은둔>에서 온 것은 아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이 서로 상관없이 태어났듯이. 김지하는 유목을 앞에 놓았고 나는 유목을 뒤에 놓았다. 유목이 앞에 있으면 불안하다. 나에게는, 유목의 수평적 날렵함은 은둔의 수직적 깊이에서 온다. 그 깊이의 하강에서 비로소 유목의 수평적 날렵함이 나비처럼 탄생한다. 정신의 자취인가? 몸의 기록인가? ”오랜 내 새 집”에 처박혀 나는 낡아가고 야위어간다. 마침내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갈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은둔과 유목’이다. ‘씌어지지 않을 자서전’.
Tags: 오랜 내 새 집, 유목, 은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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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19th, 2008
삐뚜루 나가는 데, 삐딱해지는 데는, 사실 나이가 상관없다. 충년-지학-약관-이립-불혹-지천명 씨리즈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 씨리즈도 통속화되어서 그렇지, 공자가 직선·일방향적인 것을 말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곧바른 것이 좋을 때가 많지만(정말?), 삐딱한 게 더 자주 진실에 가까이 다가선다. 덤으로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중요한 것은, 아니 생각해볼 것은, ‘어떤’이 아닐까. ‘어떤’ 삐딱함인지, ‘어떤’ 건전함인지… 니이체선생은, 진리’이냐·아니냐’는 ‘어떤’ 진리냐, ‘누구의’ 진리냐로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아주 많은 삐딱함이 사실 ‘일반적으로’ 건전하다. 청년적 겉멋이 아닌 ‘어떤’ 퇴폐는 건전한 정신보다 옳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퇴폐조차 옳음을 완성하는 순간 건전한 성숙이 되어버릴 것이다. 곰브로비치의 소설에서 보듯이, 어떤 미성숙은 억압적인 성숙보다 해방적이다. 미성숙은 성숙으로 가는 출발점이나 과정이 아니다. 빨리 끝내버려야 할 통과의례가 아닌 것이다. 미성숙은 언제나 회복되어야 할 ‘맨 정신’이고 자유이며 고독이다.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있는 맨몸이다. 그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싸움의 기록이다. 성숙은 불화의 종식이요 저항의 소멸이다. 철이 들면 건전해지고 타협적이며 절충에 익숙해지고 적응을 잘 한다. 고유한 개인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자동인형이다. 세상에 자동인형이 넘쳐난다.
Tags: 미성숙, 삐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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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14th, 2008
냇가에 가면 얄독한 돌이 많다. 물수제비를 뜰 때는 납작하고 얄독한 돌을 던진다. 그 돌은 바로 자갈돌이다. 자갈돌은 대부분 얄독하다. 얄독하지 않을 때도 있구나. 뜨거운 여름 땡볕에 구워진 자갈돌은 얄독하지 않다. 여름 계곡 차가운 냇물에서 맨발로 실컷 놀다가 발바닥이 시려지면 따뜻하게 덥히기엔 안성맞춤이다. 얄독한 돌은 ‘동그랗고 차갑고 매끄러운’ 돌을 말한다. 다섯살 때 딸아이가 지은 말이다. ‘동그랗다’는 아마 구형 보다는 원형에 가까운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샘물을 뜨러 일주일에 한번 가족 모두 한재 샘터에 가곤 하는데,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늘 그늘이 지는 그곳에 얄독한 돌이 많았다. 그 샘터가 ‘얄독하다’가 태어난 고향이다. 나는 이 말이 참으로 좋다. ‘자갈’이란 단어는 돌의 발생학을 주로 보여주지만, ‘얄독하다’는 손에 쥐어지는 감촉에서 생겨난 기표다. 돌의 질감과 무게와 모양을 예민하게 받아낸다. 아이가 받아들이는 싱싱한 감각에 한국어의 모음과 자음이 어떤 필연성을 가지고 혀끝을 대본 것은 아닐까. 추상·관념어에 대해서는 소쉬르의 언어학이 자명하지만, 감각어에는 어떤 석연찮은 신비가 있어 보인다. 그 신비는 비리다. 맨날 풀만 먹다보면 몸이 비린 것을 원한다. 나는 신비주의에 질색하지만, 그 신비는 즐거워서 그냥 누리고 싶다.
Tags: 비린 것, 신비주의, 얄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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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12th, 2008
맹목은 자기 자신을 먹이로 하여 자신의 목숨을 부지한다. 그 눈멀음의 자기장 때문에 비로소 삶의 인력이 팽팽해진다. 눈먼 출생의 한계 때문에 비로소 눈뜰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눈 멀어서 그이의 아름다움은 완성된다. 눈 뜨니 그 아름다움은 덧없는 영원이 된다. 그것이 우주 안팎에서 인간이 하는 일이다.
Tags: 눈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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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7th, 2008
부엌은 바닥이 마당보다 무릎 높이만큼 낮았다. 문짝 없는 문은 겨우 키 작은 어른 하나 출입할 정도로 낮고 좁았다. 언제나 침침하고 어둡던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으로 연탄이 쌓여 있었고, 바로 그 앞, 문가에서 마주 보이는 그 곳에 물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 키만한 높이였다. 이사다니면서 계속 가져온 것이었다. 그 항아리만 있었나. 부엌 옥상에는 자질구레한 작은 항아리들이 많았다. 그 모든 것들을 이사할 때 어떻게 옮겼을까. 내 기억으로는 트럭으로 이사한 적이 없었다. 손수레로 모두 옮겼다는 말인가. 그 먼 거리를.
물항아리에는 뚜껑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무쪽을 나란히 이어붙여 테두리를 둥글게 잘라 만든 뚜껑을 썼다. 그것이 오래되어 나무가 삭아 부스러졌다. 그 뒤부터 넓은 양은 쟁반 같은 것을 뚜껑 삼아 썼다. 뚜껑을 열면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가 물 위에 떠 천천히 움직이며 돌고 있었다. 물이 가득 찼을 때는 뚜껑의 무게과 물의 부력 사이에서 끼여 있다가 뚜껑을 여는 순간 물 위로 쑥 솟아올랐다. 도로 덮을 때는 가벼운 양은 쟁반이 물 위로 뜨려는 바가지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그 위에 무거운 냄비 같은 것을 올려 놓아야 했다. 항아리에다가 그렇게 식수를 받아 놓고 썼다. 그 물로 밥도 하고 국도 끓였다. 이사온지 얼마 안 되어서는, 기역자 골목 모서리집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물값을 얼마 냈다. 처음에는 양동이로 길어다 항아리며 드럼통에다 담았다. 조금 지나서 말랑말랑한 연두색 호오스를 골목을 따라 길게 이어놓고 물을 채웠다. 방안의 주전자가 비면 항아리에서 직접 떠 먹었다. 골목에서 놀다 목이 마를 때, 부엌으로 뛰어들어와 물을 떠 먹었다. 여름에는 그렇게 부엌까지 뛰어들어와 물을 마신 적이 헤아릴 수 없었다.
항아리의 물 높이가 점점 낮아진다. 부엌이 컴컴해서 항아리 속은 더 칠흑 같다. 아득하다. 눅눅한 그 속에 뭔가 꼭 있을 것 같다. 머리를 항아리 속에 들이밀고 웅웅거려 본다. 물 먹은 소리가 울린다. 물 높이가 바닥에 가까워지면서 바가지에 손이 닿지 않는다. 가슴을 항아리 주둥이 가장자리에 얹혀 매달린다. 항아리 안으로 깊숙이 윗몸을 숙인다. 팔을 힘껏 뻗는다. 바가지가 손에 잡힌다. 물을 조금 뜬다. 뒷통수가 항아리 주둥이에 부딪히지 않게 윗몸을 빼내며 부엌 바닥으로 점프하듯 착지한다. 바가지를 기울여 벌컥벌컥 마신다. 달다. 물이 입 양쪽으로 흘러 바닥에 떨어진다. 정강이에 튄다. 차갑다. 남은 물을 바닥에 그냥 휙 끼얹고 바가지는 항아리 속에 집어던진다. 항아리벽에 부딪히다가 물을 때리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렇게나 뚜겅을 얹는다. 마음이 급하다. 얼른 골목으로 튀어나갔다.
Tags: 물, 바가지, 부엌,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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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5th, 2008
해마다 겨울이면 45년이 넘은 이 옴팡집 더그매에 겨우살이를 하러 쥐가 기어들어온다. 그림책 <프레드릭>에 나오는 그런 녀석들이다. 한 놈인지 몇 놈인지 확실치 않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내 방 더그매에 아무런 기척이 없다. 그러다가 12월로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되면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쓰는 방(서재)은, 먼저 살던 사람이 안마당쪽으로 나 있던 외양간을 입식부엌으로 개조하고, 뒤꼍으로 나 있던 본래의 부엌을 개조해서 만든 방이다. 부엌이었을 때는 천장 없이 바로 보꾹 아래에서 부엌 살림살이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개조하면서 보꾹 밑에 합판으로 천장을 댄 모양이다. 그래서 그 사이에 더그매가 생겼고 언제 어떻게 알았는지, 겨울이 되면 방안 훈기 때문에 따뜻한 그 안으로 들쥐들이 월동하러 들어온다.
이 방 말고 본래부터 방이었던 방들은 보꾹 아래 천장이 없다. 그러니 더그매가 없다. 개조해서 덧댄 이 방 말고 원래 있던 방은 마루칸까지 합치면 모두 여섯 칸이다. 강원도 지방의 가옥구조는 모든 방들이 서로 맞붙어 한가운데로 모여 있는 형국이다. 겨울이 길고 몹시 추우니 적은 땔감으로 난방 효율을 높이려면 그렇게 방칸들을 가옥중앙으로 모으고 구들을 때야 했을 것이다. 남도쪽 가옥은 대청마루를 가운데에 두는 개방형 구조이어서 활짝 가슴을 펴고 있는 것 같다면, 이 지방의 가옥은 방들이 웅크리고 서로 껴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영동지방의 이곳은 영서지방보다 따뜻해서 전라북도 군산 기온에 가깝다. 골짜기라서 바닷가쪽보다 다소 추운 듯하지만 그래도 서울·경기도보다는 훨씬 따뜻하다.
처음 이사해오던 겨울에 더그매 쥐돌이들의 부스럭대는 소란스러움을 겪으면서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추억에 잠기곤 했다. 그 시절 서울 변두리 가난한 집에는 더그매가 있어서 겨울만 되면 쥐들이 겨울나기를 하러 들어왔고, 우리들은 그 녀석들의 소란스러운 기척을 들으며 저녁밥을 먹고 텔레비전 주말의 명화를 보다가 부스럭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작년 겨울에는 쥐들이 들어오지 못해서 조용한 겨울을 났다. 이 골짜기에 겨울이면 바람이 심해서 바람막이 비닐을 베란다처럼 빙 둘러쳐서 아마 쥐들이 들어올 수가 없었으리라. 이번 겨울에는 사정이 생겨서 바람막이 비닐을 정비하지 못하는 바람에 다시 통로가 생겼다. 그리하여 다시 쥐돌이 이웃들과 함께 겨울을 나게 되었다. 더그매 친구들과 함께 겨울을 나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비위생적일 일도 거의 없다. 더러 시끄럽기도 하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오히려 녀석들의 부스럭대는 소란스러움이 객관적 상관물이 되어 옛 추억을 재생한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마음이 따뜻해져 감동하기까지 한다.
얼마 전에 알았는데, 그 녀석들이 안마당쪽 처마 어디 구멍으로만 드나드는 게 아니었다. 안방에 앉아 있던 참에, 뒤꼍으로 난 지게문의 문살을 타고 처마쪽으로 기어올라가는 것을 목격했다. 뒤꼍에 백열등을 켜놓아서 문살을 타고 올라가는 꼬리와 엉덩이가 선명한 그림자로 비쳤다. 더그매로 들어가는 통로가 여럿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녀석들이 될 수 있으면 깨끗하게 겨울을 났으면 한다. 천장에다 제발 똥은 너무 많이 안 쌌으면 좋겠고, 거기서 죽어 썩어가면서 냄새를 피우거나 구더기가 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공연한 걱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거기서 그 놈들이 죽을 까닭이 없다고 안심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녀석들과 함께 지내오고 있다. 이제 충분히 익숙해져서 고요한 산골의 깊은 밤에 알맞은 어울림으로 귀에 곰살궂게 느껴진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눈이 꽤 와서 쌓여 있는지라 이 놈들이 나가봐야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해올 수도 없을텐데 어디 갔나, 궁금하다. 왜 저렇게 조용하지. 모두 어디로 이사를 갔나. 혹시 죄다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고요한 밤에 책상에 앉아 책 보다가 잠시 멍하니 감고 눈을 쉬게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때마다 고요한 더그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정말 궁금하다.
서울에서 두어 주 지내다 온 아이들과 함께 외출을 하려고 마당에 먼저 나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찬 바람 때문에 어디 부셔진 것은 없나 마당과 집채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이들 방문앞 툇마루 아래쪽에 누워 있는 아주 살찐 쥐 한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몸이 온전하다. 고양이가 잡아서 먹다가 버려두고 간 것이 아니다. 털은 깨끗하고 토실토실하게 살쪄 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녀석이 바로 더그매에 살던 놈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 녀석이 죽어서 여기에 이렇게 등을 구부리고 누워 있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이 아이들을 불러다가, 이 녀석이 바로 아빠 서재 더그매에서 살던 놈인데, 글쎄 이렇게 죽었다고 호들갑을 떤다. 아이들이 가운데에 죽은 쥐를 두고 마주 앉아 살펴본다. 도대체 그 녀석이 왜 죽었을까. 고양이한테 잡힌 것도 아니고 굶어죽은 것도 아니다. 마당을 벗어나면 논이며 밭에는 온통 눈이 쌓여 있어서 무엇을 잘못 집어먹고 죽을 수도 없다. 며칠 동안 틈만 나면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녀석의 죽음은 정말 수수께끼다.
겨울이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웃은 떠났고, 나는 이웃을 잃었다.
Tags: 겨울나기, 더그매, 수수께끼, 이별, 이웃, 죽음,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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