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과잉, 사유의 빈곤
서구문학사에서 재현(모방)의 역사를 다룬 《미메시스: 서구문학에 나타난 실재의 표현 (Mimesis:The Representation of Reality in Western Literature)》은, 아우엘바흐(Erich Auerbach, 1892–1957)가 전쟁(2차대전)을 피해 작은 시골 도시에 머물면서 그곳 도서관에서 겨우 이용할 수 있는 문헌자료만으로 썼다. 다룰 수 있는 문헌자료가 매우 적다보니 자료에 의존하기보다는 고전 텍스트에 대한 깊이 읽기–꼼꼼히 읽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방향으로 저술을 완성했다고 한다. 《미메시스》라는 저작의 뛰어남은 바로 그 꼼꼼히 읽기의 수직적 깊이에 있다. 이것을 보면, 모든 경우에 대해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자료와 책이 없어서 연구를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상상력과 창조적 사유의 빈곤을 탓해야지, 자료의 빈곤을 탓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정보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중매체나 인터넷의 텍스트에 대해서는 어차피 날(raw) 데이터와 정보만을 다루기 때문에 지식과 사유의 부재를 거론하지 않겠다. 그러나 인문학자들이 생산해내는 텍스트가 많은 자료와 정보를 다루고 취합하면서도 창조적 사유의 부재와 빈곤을 드러내는 경우를 허다하게 많이 본다. 자료와 정보를 취합하고 처리하는 데에는 능력들이 뛰어난 듯하다. 그러나 창조적 생각이 빈약하니, 그저 자료와 정보의 가공과 재가공이 있을 뿐이다. 새로운 차원의 지식생산이 빈곤할 수밖에 없다. 정말 이제는 데이터와 정보가 지식과 사유를 대체한 것일까.
아우엘바흐의 예에서 보면 자료의 제한이, 특히 문학 연구에서, 연구의 빈곤으로 귀착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꼼꼼히 읽기와 깊이 읽기, 섬세한 사유와 해석으로 극복되었다. 다루어야 할 자료의 면적만 넓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적정 범위 안에서 정교한 수직적 천착이 더 요구되고, 여기에 창발적인 사유가 필요하리라. 『논어』 「위정(爲政)」편에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은 공부하고 연구할 때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가르쳐준다. 이 구절의 핵심은 〈學〉과 〈思〉의 대조에 있다. 두 글자의 해석에 여러 의견이 있다. 나는, 〈學〉은 현실 데이터와 정보에 대한 객관적 지식습득으로 보고, 〈思〉는 객관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과 창조적 사유로 본다. 현실의 데이터나 정보를 배우고 익혀 지식습득에만 급급하고 정작 필요한 자기의 능동적 상상력과 창조적 사유가 빈곤하다면 그저 어리석을 뿐이고, 멋대로 상상하고 생각할 줄만 알았지, 객관적 데이터와 경험적 현실에 대한 조회를 통해서 이론과 사유를 재정립하지 못하면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그렇다면, ‘웹 2.0’ 국면의 주요한 도구로서 블로그라는 미디어는 인터넷 환경 안에서 ‘하이퍼텍스트(hypertext)적인 사유’의 수단으로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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