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아프다

“사실 엄마는 건강해 본 적이 없거든요. 엄마는 여자잖아요. 니꼴라이 일리치 아저씨, 여자는 언제나 어딘가 아프죠.”

(<하찮은 것>, 안톤 체홉, 오종우 옮김)

여덟 살짜리 꼬마 알료샤가 엄마의 애인한테 하는 말이다. 여덟 살 나이에 벌써 ‘여자’의 본질 하나를 꿰뚫었다. 왜, 여자는 언제나 아플까? 어렸을 때부터 내가 만나거나 본 여자들은 한결같이 아팠다. 누이들도 그랬고, 이모들도 그랬고, 학교의 여선생들도 그랬다. 아주 어린 여자아이들만 아프지 않았을 뿐, 열두어 살 넘은 여자들은 죄다 아팠다. 그들이 아프지 않은, 몸과 마음이 쾌적한 날들은 드물었다. 청년이 되어서 만나거나 겪은 모든 여자들도 아팠다. 그들은 어제 아팠고 오늘 아프고 내일도 아팠다. 여자들은 아프기 위해서 태어난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을 하고 보니, 아내도 아프다.

언젠가 어떤 여성 화가가 내게 말했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서 델리키트한 존재라고. 막심 고리끼가 안톤 체홉에게 보내는 편지에 당신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고나니 다른 사람의 작품은 모두 펜이 아닌 막대기로 쓴 것처럼 여겨진다고 썼다. 말하자면, 남자가 막대기로 쓴 글이라면 여자는 펜으로 쓴 글쯤 되는가.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보니(한 99년쯤 살았다), 여자들이 왜 늘 아픈 것인지 알 것도 같다. 그러나 여전히, 여자를 안다는 것은 난해한 일이다. 그것에 비하면 맑스의 <자본>,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두순의 <법계관문>, 러셀·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를 이해하는 일이 쉬울 것이다. 나는 왜 여자들이 언제나 그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여자들이여, 그대들은 여자들이 왜 그리 늘 아픈 것인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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