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진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어부가 담뱃대를 피워물고 느긋하게 고깃배 옆에 누워 있었다. 한 사업가가 그 어부를 보고 물었다.
“왜 고기를 안 잡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거요?”
“오늘 잡을 만큼은 다 잡았소.”
“아직도 많이 잡을 수 있는데 왜 더 잡지 않소?”
“더 잡아 뭐하게요?”
“돈을 더 모아야지요. 그래서 배에다 모터를 달아서 더 먼 바다로 나가면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지 않겠소. 그리고 더 튼튼한 그물을 사서 훨씬 더 많은 고기를 잡아 팔면 그 만큼 더 벌게 되잖소. 머지 않아 배를 여러 척 사들일 수 있을 것이고 대규모 선단을 꾸릴 수도 있소. 그렇다면 당신은 나처럼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단 말이오.”
“그렇게 해서 그 다음엔 뭘 합니까?”
“뭐 하냐구요? 그 다음에는 인생을 느긋하게 즐기면서 사는 겁니다.”
“그럼, 당신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참 쉽고 간단하다. 담백한 이야기다. 심오하고 복잡한 얘기는 전혀 없다. 저 어부처럼 사는 것이, 잘 사는 것(Well Being)이다. 에리히 프롬 말마따나, 소유(To Have)가 아니라 삶(To Be)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주로 물질적 부의 축적만 얘기하고 있지만, 가치 전도의 다른 레퍼토리 곧, 외모, 유흥, 지식, 명성, 지위, 권력 따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고 보면, 저 이야기를 알아듣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말이 된다. 쉽고 간단한 것이 오히려 더 잘 안 보이도록 머리와 마음이 고안되어 있다.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더 심하다. 그렇다고 가방끈 짧은 이들이 나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가방끈이 긴 사람들은 머리통과 마음이 따로 놀지만, 가방끈 짧은 이들은 아예 머리통과 몸통이 온통 홀려 있다.
그렇게 사업가의 전당포에 영혼을 저당잡히고 인생을 탕진하고 있다. 그리고도 자기가 그러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고 없이 제 수명 다 누리고 살아도, 탕진할 인생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