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그매 이웃

해마다 겨울이면 45년이 넘은 이 옴팡집 더그매에 겨우살이를 하러 쥐가 기어들어온다. 그림책 <프레드릭>에 나오는 그런 녀석들이다. 한 놈인지 몇 놈인지 확실치 않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내 방 더그매에 아무런 기척이 없다. 그러다가 12월로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되면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쓰는 방(서재)은, 먼저 살던 사람이 안마당쪽으로 나 있던 외양간을 입식부엌으로 개조하고, 뒤꼍으로 나 있던 본래의 부엌을 개조해서 만든 방이다. 부엌이었을 때는 천장 없이 바로 보꾹 아래에서 부엌 살림살이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개조하면서 보꾹 밑에 합판으로 천장을 댄 모양이다. 그래서 그 사이에 더그매가 생겼고 언제 어떻게 알았는지, 겨울이 되면 방안 훈기 때문에 따뜻한 그 안으로 들쥐들이 월동하러 들어온다.

이 방 말고 본래부터 방이었던 방들은 보꾹 아래 천장이 없다. 그러니 더그매가 없다. 개조해서 덧댄 이 방 말고 원래 있던 방은 마루칸까지 합치면 모두 여섯 칸이다. 강원도 지방의 가옥구조는 모든 방들이 서로 맞붙어 한가운데로 모여 있는 형국이다. 겨울이 길고 몹시 추우니 적은 땔감으로 난방 효율을 높이려면 그렇게 방칸들을 가옥중앙으로 모으고 구들을 때야 했을 것이다. 남도쪽 가옥은 대청마루를 가운데에 두는 개방형 구조이어서 활짝 가슴을 펴고 있는 것 같다면, 이 지방의 가옥은 방들이 웅크리고 서로 껴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영동지방의 이곳은 영서지방보다 따뜻해서 전라북도 군산 기온에 가깝다. 골짜기라서 바닷가쪽보다 다소 추운 듯하지만 그래도 서울·경기도보다는 훨씬 따뜻하다.

처음 이사해오던 겨울에 더그매 쥐돌이들의 부스럭대는 소란스러움을 겪으면서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추억에 잠기곤 했다. 그 시절 서울 변두리 가난한 집에는 더그매가 있어서 겨울만 되면 쥐들이 겨울나기를 하러 들어왔고, 우리들은 그 녀석들의 소란스러운 기척을 들으며 저녁밥을 먹고 텔레비전 주말의 명화를 보다가 부스럭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작년 겨울에는 쥐들이 들어오지 못해서 조용한 겨울을 났다. 이 골짜기에 겨울이면 바람이 심해서 바람막이 비닐을 베란다처럼 빙 둘러쳐서 아마 쥐들이 들어올 수가 없었으리라. 이번 겨울에는 사정이 생겨서 바람막이 비닐을 정비하지 못하는 바람에 다시 통로가 생겼다. 그리하여 다시 쥐돌이 이웃들과 함께 겨울을 나게 되었다. 더그매 친구들과 함께 겨울을 나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비위생적일 일도 거의 없다. 더러 시끄럽기도 하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오히려 녀석들의 부스럭대는 소란스러움이 객관적 상관물이 되어 옛 추억을 재생한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마음이 따뜻해져 감동하기까지 한다.

얼마 전에 알았는데, 그 녀석들이 안마당쪽 처마 어디 구멍으로만 드나드는 게 아니었다. 안방에 앉아 있던 참에, 뒤꼍으로 난 지게문의 문살을 타고 처마쪽으로 기어올라가는 것을 목격했다. 뒤꼍에 백열등을 켜놓아서 문살을 타고 올라가는 꼬리와 엉덩이가 선명한 그림자로 비쳤다. 더그매로 들어가는 통로가 여럿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녀석들이 될 수 있으면 깨끗하게 겨울을 났으면 한다. 천장에다 제발 똥은 너무 많이 안 쌌으면 좋겠고, 거기서 죽어 썩어가면서 냄새를 피우거나 구더기가 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공연한 걱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거기서 그 놈들이 죽을 까닭이 없다고 안심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녀석들과 함께 지내오고 있다. 이제 충분히 익숙해져서 고요한 산골의 깊은 밤에 알맞은 어울림으로 귀에 곰살궂게 느껴진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눈이 꽤 와서 쌓여 있는지라 이 놈들이 나가봐야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해올 수도 없을텐데 어디 갔나, 궁금하다. 왜 저렇게 조용하지. 모두 어디로 이사를 갔나. 혹시 죄다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고요한 밤에 책상에 앉아 책 보다가 잠시 멍하니 감고 눈을 쉬게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때마다 고요한 더그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정말 궁금하다.

서울에서 두어 주 지내다 온 아이들과 함께 외출을 하려고 마당에 먼저 나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찬 바람 때문에 어디 부셔진 것은 없나 마당과 집채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이들 방문앞 툇마루 아래쪽에 누워 있는 아주 살찐 쥐 한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몸이 온전하다. 고양이가 잡아서 먹다가 버려두고 간 것이 아니다. 털은 깨끗하고 토실토실하게 살쪄 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녀석이 바로 더그매에 살던 놈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 녀석이 죽어서 여기에 이렇게 등을 구부리고 누워 있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이 아이들을 불러다가, 이 녀석이 바로 아빠 서재 더그매에서 살던 놈인데, 글쎄 이렇게 죽었다고 호들갑을 떤다. 아이들이 가운데에 죽은 쥐를 두고 마주 앉아 살펴본다. 도대체 그 녀석이 왜 죽었을까. 고양이한테 잡힌 것도 아니고 굶어죽은 것도 아니다. 마당을 벗어나면 논이며 밭에는 온통 눈이 쌓여 있어서 무엇을 잘못 집어먹고 죽을 수도 없다. 며칠 동안 틈만 나면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녀석의 죽음은 정말 수수께끼다.

겨울이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웃은 떠났고, 나는 이웃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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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더그매 이웃”

  1. 편집단자 Says:

    이런 말씀을 불쑥 드리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게는 이 글의 뒷맛이 장 그르니에 (한국어판)에 나오는 고양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와 비견됩니다.
    훌륭한 글 읽고 갑니다. 건필하십시오.

  2. altcre Says:

    그런가요? 장 그르니에라면 <섬>이나 <일상>쯤 되겠군요. 오래전에 읽어서… 다시 한번 고양이 이야기를 들춰봐야겠습니다. 거친 글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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