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항아리

부엌은 바닥이 마당보다 무릎 높이만큼 낮았다. 문짝 없는 문은 겨우 키 작은 어른 하나 출입할 정도로 낮고 좁았다. 언제나 침침하고 어둡던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으로 연탄이 쌓여 있었고, 바로 그 앞, 문가에서 마주 보이는 그 곳에 물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 키만한 높이였다. 이사다니면서 계속 가져온 것이었다. 그 항아리만 있었나. 부엌 옥상에는 자질구레한 작은 항아리들이 많았다. 그 모든 것들을 이사할 때 어떻게 옮겼을까. 내 기억으로는 트럭으로 이사한 적이 없었다. 손수레로 모두 옮겼다는 말인가. 그 먼 거리를.

물항아리에는 뚜껑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무쪽을 나란히 이어붙여 테두리를 둥글게 잘라 만든 뚜껑을 썼다. 그것이 오래되어 나무가 삭아 부스러졌다. 그 뒤부터 넓은 양은 쟁반 같은 것을 뚜껑 삼아 썼다. 뚜껑을 열면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가 물 위에 떠 천천히 움직이며 돌고 있었다. 물이 가득 찼을 때는 뚜껑의 무게과 물의 부력 사이에서 끼여 있다가 뚜껑을 여는 순간 물 위로 쑥 솟아올랐다. 도로 덮을 때는 가벼운 양은 쟁반이 물 위로 뜨려는 바가지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그 위에 무거운 냄비 같은 것을 올려 놓아야 했다. 항아리에다가 그렇게 식수를 받아 놓고 썼다. 그 물로 밥도 하고 국도 끓였다. 이사온지 얼마 안 되어서는, 기역자 골목 모서리집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물값을 얼마 냈다. 처음에는 양동이로 길어다 항아리며 드럼통에다 담았다. 조금 지나서 말랑말랑한 연두색 호오스를 골목을 따라 길게 이어놓고 물을 채웠다. 방안의 주전자가 비면 항아리에서 직접 떠 먹었다. 골목에서 놀다 목이 마를 때, 부엌으로 뛰어들어와 물을 떠 먹었다. 여름에는 그렇게 부엌까지 뛰어들어와 물을 마신 적이 헤아릴 수 없었다.

항아리의 물 높이가 점점 낮아진다. 부엌이 컴컴해서 항아리 속은 더 칠흑 같다. 아득하다. 눅눅한 그 속에 뭔가 꼭 있을 것 같다. 머리를 항아리 속에 들이밀고 웅웅거려 본다. 물 먹은 소리가 울린다. 물 높이가 바닥에 가까워지면서 바가지에 손이 닿지 않는다. 가슴을 항아리 주둥이 가장자리에 얹혀 매달린다. 항아리 안으로 깊숙이 윗몸을 숙인다. 팔을 힘껏 뻗는다. 바가지가 손에 잡힌다. 물을 조금 뜬다. 뒷통수가 항아리 주둥이에 부딪히지 않게 윗몸을 빼내며 부엌 바닥으로 점프하듯 착지한다. 바가지를 기울여 벌컥벌컥 마신다. 달다. 물이 입 양쪽으로 흘러 바닥에 떨어진다. 정강이에 튄다. 차갑다. 남은 물을 바닥에 그냥 휙 끼얹고 바가지는 항아리 속에 집어던진다. 항아리벽에 부딪히다가 물을 때리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렇게나 뚜겅을 얹는다. 마음이 급하다. 얼른 골목으로 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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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물항아리”

  1. 에코 Says:

    센텐스의 걸음걸이가 절묘하군요. 모노톤 회상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문단은 마치 천연색 필름으로 확 바뀌는 듯한, 생생한 현실감이 매혹적이에요. ^^ 이랬던 시절이 있었어요?

  2. altcre Says:

    그럼요. 열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나중에는 상수도를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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