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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6 Oct 2008 21:02:04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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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럴 땐 성적순이 좋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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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6 Oct 2008 18:00:0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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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옷과밥과자유]]></category>

		<category><![CDATA[도서관]]></category>

		<category><![CDATA[독서가족]]></category>

		<category><![CDATA[사유의 빈곤]]></category>

		<category><![CDATA[소박한 삶]]></category>

		<category><![CDATA[하이퍼텍스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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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속초에 있는 ‘속초평생정보관’이라는 곳에서 우수독서가족상을 주었다. 상품으로 5만원어치의 도서상품권과 부상으로 지공예 작품 하나를 받았다. 속초 시내에 살던 4년 전에 이미 한번 받았고 이번에 다시 순서가 돌아온 것이다. 대출이용률이 최고로 높아도 해마다 연속으로 상을 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한편, 같은 속초 시내에 있는 ‘속초도서관’에서는 한번도 상을 주지 않는다. 우수이용자 포상제도가 없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속초에 있는 ‘속초평생정보관’이라는 곳에서 우수독서가족상을 주었다. 상품으로 5만원어치의 도서상품권과 부상으로 지공예 작품 하나를 받았다. 속초 시내에 살던 4년 전에 이미 한번 받았고 이번에 다시 순서가 돌아온 것이다. 대출이용률이 최고로 높아도 해마다 연속으로 상을 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한편, 같은 속초 시내에 있는 ‘속초도서관’에서는 한번도 상을 주지 않는다. 우수이용자 포상제도가 없는 것일까. (강원도는 도교육청에서 관할하는 도서관에 ‘속초평생정보관’이라는 이상한 명칭을 붙여놓았다. 이곳과는 별도로 시교육청에 속하는 ‘속초도서관’이 또 있는 것이다.) </p>
<p>양양 산골로 들어온 4년 전부터는 역시 속초-양양교육청에 속하는 양양도서관도 이용하고 있는데, 이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수독서가족상을 받은 바 있다. 그 이후로 또 준다는 소식이 없다. 양양도서관도 대출이용률이 아무리 높아도 같은 가족에게 해마다 상을 주지 않는 규정을 적용하는가 보다.</p>
<p>세 곳 도서관이 해마다 이용자 포상을 돌려가며 배분하지 않고 오직 대출이용률만 평가해서 상을 준다면, 내 생각으로는 우리 가족이 <strong>세 도서관에서 해마다 받았을 것이다.</strong> 상 타령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상을 무척이나  밝히는 위인으로 나를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교육세는 다 내면서 교육청 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하는, <strong>‘탈학교배움이’(unschooler)</strong>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할 수 있는 도서상품권이 생겨서 좋고, 밋밋하게 오늘이 어제 같고 또 내일이 오늘 같고, 외적 자극이나 특별함 없이 날마다 한결 같은 시골에서 살다보면, 그런 작은 해프닝과 이벤트에도 아이들과 함께 희희낙락한다. </p>
<p>물론, 나는 늘 한결 같은 단순한 일상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 목가적이고 조용하며 질박하고 단순한 삶이 언제나 천천히 게으름을 피우는 곳, 그런 곳을 찾아 이 산골까지 오지 않았겠나. 산업혁명 초기를 살았던 월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850)가 런던 시내에서 읊조린 탄식은, 산업화를 초고속 개발독재로 완수한 남한의 서울 시내에서 내가 느끼는 피곤함과 별반 다르지 않다.</p>
<blockquote><p>Written in London, September, 1802</p>
<p>O Friend! I know not which way I must look<br />
For comfort, being, as I am, opprest,<br />
To think that now our life is only drest<br />
For show; mean handy-work of craftsman, cook,<br />
Or groom!—We must run glittering like a brook<br />
In the open sunshine, or we are unblest:<br />
The wealthiest man among us is the best:<br />
No grandeur now in nature or in book<br />
Delights us. Rapine, avarice, expense,<br />
This is idolatry; and these we adore:<br />
<strong>Plain living and high thinking</strong> are no more:<br />
The homely beauty of the good old cause<br />
Is gone; our peace, our fearful innocence,<br />
And pure religion breathing household laws.
</p></blockquote>
<p>사실, 동해안으로 이사오면서 속초 같은 곳에 도서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사와서도 1년이 지나서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것도 두 군데나 있다니. 그러나 도서대여점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실제로 가보니 조금 나은 정도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였다. 공공 도서관은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닌가. 장서규모는 형편없어도 간간이 볼 만한 신간들은 자주 들어오고 이제는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도 구할 수 없는 요긴한 책들이 가끔 발견되는 행운이 있어서, 그 정도 범위 안에서 이용할 만했다. 내가 볼 책 대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아이들 책 빌리는 일이다. 아이들 그림책 ― 이제는 동화책 사주는 것을 전부 감당할 수 없으니 도서관이 감당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p>
<p>서구문학사에서 재현(모방)의 역사를 다룬 《미메시스: 서구문학에 나타난 실재의 표현 (Mimesis:The Representation of Reality in Western Literature)》은, 아우엘바흐(Erich Auerbach, 1892–1957)가 전쟁(2차대전)을 피해 작은 시골 도시에 머물면서 그곳 도서관에서 겨우 이용할 수 있는 문헌자료만으로 썼다고 한다. 다룰 수 있는 문헌자료가 매우 적다보니 자료에 의존하기보다는 고전 텍스트에 대한 깊이 읽기–꼼꼼히 읽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방향으로 저술을 완성했다고 한다. 《미메시스》라는 저작의 뛰어남은 바로 그 꼼꼼히 읽기의 수직적 깊이에 있다. 이것을 보면, 모든 경우에 대해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자료와 책이 없어서 연구를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strong>상상력과 창조적 사유의 빈곤을 탓해야지, 자료의 빈곤을 탓할 것이 아니다.<br />
</strong></p>
<p>우리는 이미 정보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중매체나 인터넷의 텍스트에 대해서는 어차피 날(raw) 데이터와 정보만을 다루기 때문에 지식과 사유의 부재를 거론하지 않겠다. 그러나 인문학자들이 생산해내는 텍스트가 많은 자료와 정보를 다루고 취합하면서도 창조적 사유의 부재와 빈곤을 드러내는 경우를 허다하게 많이 본다. 자료와 정보를 취합하고 처리하는 데에는 능력들이 뛰어난 듯하다. 그러나 창조적 생각이 빈약하니, 그저 자료와 정보의 가공과 재가공이 있을 뿐이다. 새로운 차원의 지식생산이 빈곤할 수밖에 없다. 정말 이제는 데이터와 정보가 지식과 사유를 대체한 것일까. </p>
<p>아우엘바흐의 예에서 보면 자료의 제한이, 특히 문학 연구에서, 연구의 빈곤으로 귀착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꼼꼼히 읽기와 깊이 읽기, 섬세한 사유와 해석으로 극복되었다. 다루어야 할 자료의 면적만 넓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적정 범위 안에서 정교한 수직적 천착이 더 요구되고, 여기에 창발적인 사유가 필요하리라. 『논어』 「위정(爲政)」편에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은 공부하고 연구할 때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가르쳐준다. 이 구절의 핵심은 〈學〉과 〈思〉의 대조에 있다. 두 글자의 해석에 여러 의견이 있다. 나는, 〈學〉은 현실 데이터와 정보에 대한 객관적 지식습득으로 보고, 〈思〉는 객관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과 창조적 사유로 본다. 현실의 데이터나 정보를 배우고 익혀 지식습득에만 급급하고 정작 필요한 자기의 능동적 상상력과 창조적 사유가 빈곤하다면 그저 어리석을 뿐이고, 멋대로 상상하고 생각할 줄만 알았지, 객관적 데이터와 경험적 현실에 대한 조회를 통해서 이론과 사유를 재정립하지 못하면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는 말이다. </p>
<p>마지막으로 하나 더. 그렇다면, ‘웹 2.0’ 국면의 주요한 도구로서 블로그라는 미디어는 인터넷 환경 안에서 ‘하이퍼텍스트(hypertext)적인 사유’의 <strong>수단</strong>으로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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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샤먼의 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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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8 Sep 2008 12:35:22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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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뱀에게발을]]></category>

		<category><![CDATA[금융공황]]></category>

		<category><![CDATA[세계화]]></category>

		<category><![CDATA[전지구적 자본주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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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전 세계가, 예전에는 전쟁이라 불렀던 일반 교역의 기지가 되었다. 단일 시장의 목적 또한 단 하나이다. 즉 시장 그 자체이다. 시장은 가능한 공간 전체로 확장을 추구한다.
시장은 목적을 달성했다.
가능한 공간은 지구 전체가 되었다.
그래서 지구 전체가 자신과의 경쟁 관계에 돌입했다. 경쟁, 확장, 이윤은 쌍방의 제한된 상태에서만 합리적이다. 규모가 더 확대되면, 증가 성향이 더 이상 어떤 적수나 경쟁 상대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altcre.net/altcre/wp-content/uploads/2008/09/dashi-shaman-dance.jpeg" alt="dashi-shaman-dance" title="샤먼의 춤" width="400" height="165" /></p>
<blockquote><p>전 세계가, 예전에는 전쟁이라 불렀던 일반 교역의 기지가 되었다. 단일 시장의 목적 또한 단 하나이다. 즉 시장 그 자체이다. 시장은 가능한 공간 전체로 확장을 추구한다.<br />
시장은 목적을 달성했다.<br />
가능한 공간은 지구 전체가 되었다.<br />
그래서 지구 전체가 자신과의 경쟁 관계에 돌입했다. 경쟁, 확장, 이윤은 쌍방의 제한된 상태에서만 합리적이다. 규모가 더 확대되면, 증가 성향이 더 이상 어떤 적수나 경쟁 상대도 찾아내지 못하게 되는 즉시 그것은 자신을 축으로 빙빙 돌아가는 샤먼의 춤이 된다. 샤먼은 쓰러지는 순간 자신의 몸뚱이가 일으키는 먼지 더미 속에서 황홀경에 빠진다.</p></blockquote>
<p style="text-align: right;">《떠도는 그림자들》, 116-117쪽, 파스칼 키냐르 (송의경, 문학과지성사, 2003) </p>
<p style="text-align: center;">***</p>
<p>샤먼들이 저 바다 건너에서 쓰러지고들 있단다. 그들의 몸뚱이가 일으키는 먼지가 자욱하여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바야흐로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황홀경에 빠질 차례다. 이 황홀경을 눈물로 보내는 자도 있고 즐거움으로 보내는 자도 있을 것이다. 눈물로 보내는 자들에게는 또다시 샤먼의 춤판이 기다리겠지만 기꺼이, 즐기는 이들에게는 먼지 더미 속의 황홀경은 해방이 될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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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계급은 구조가 아니라 사건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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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0 Jul 2008 14:41:32 +0000</pubDate>
		<dc:creator>altcre</dc:creator>
		
		<category><![CDATA[간서치연습]]></category>

		<category><![CDATA[노동계급]]></category>

		<category><![CDATA[노동사]]></category>

		<category><![CDATA[문화]]></category>

		<category><![CDATA[사회사]]></category>

		<category><![CDATA[신문화사]]></category>

		<category><![CDATA[영국]]></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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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160;&#160;&#160;《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상·하》, E. P. 톰슨, (나종일 외, 창작과비평사, 2000)
여름 피서용으로 아주 적당한 책이다. 상·하권 모두 합쳐 1000쪽이 넘는 읽을거리가 ‘푸짐한’ 책이다.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서구 역사학에서 신문화사적 전환의 선구였다. 동시에 사회사적 역사서술의 중요한 한 면모인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한 전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말하자면 신문화사와 사회사의 모범적인 종합적 균형이랄 수 있겠다.
프랑스 아날학파에서 시작된 구조사–사회사적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2149&amp;ttbkey=ttbgooxoo0528002&amp;COPYPaper=1" onclick="window.open(this.href); return false;"><img style="border: 1px solid gray;" src="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36482149_1.gif" width="102" height="150" alt="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상" title="《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상》, E. P. 톰슨, (나종일 외, 창작과비평사, 2000)" /></a>&nbsp;&nbsp;&nbsp;&nbsp;<a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2157&amp;ttbkey=ttbgooxoo0528003&amp;COPYPaper=1" onclick="window.open(this.href); return false;"><img style="border: 1px solid gray;" src="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36482157_1.gif" width="102" height="150" alt="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하" title="《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하》, E. P. 톰슨, (나종일 외, 창작과비평사, 2000)" /></a><span style="display: block;">《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상·하》, E. P. 톰슨, (나종일 외, 창작과비평사, 2000)</span></p>
<p>여름 피서용으로 아주 적당한 책이다. 상·하권 모두 합쳐 1000쪽이 넘는 읽을거리가 ‘푸짐한’ 책이다.</p>
<p>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서구 역사학에서 신문화사적 전환의 선구였다. 동시에 사회사적 역사서술의 중요한 한 면모인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한 전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말하자면 신문화사와 사회사의 모범적인 종합적 균형이랄 수 있겠다.</p>
<p>프랑스 아날학파에서 시작된 구조사–사회사적 역사서술은 사회과학적 모델에 입각해서 역사서술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당대적 사회과학적 이론과 개념틀을 가지고 역사인식을 이끌어낸다.이런 접근은 과거의 문화를 현재의 관점으로 재단하는 근본적으로 ‘독백적’인 역사서술이다. 에드워드 헬렛 카가 표현했듯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할 때의 그런 대화에는 이르지 못하는 역사서술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서 톰슨의 역사는 그러한 대화를 추구한다. 마치 미하일 바흐친의 대화론이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에서 분석해내는 다성악 구조에서처럼 과거의 문화 주체들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 즉 사료에 쓰여진 과거의 문화적 의미주체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역사서술이 이루진다. 현재의 문화와 과거의 문화가 동등하게 참여하여 대화를 이루는 대화공간 자체가 바로 역사서술인 것이다.</p>
<p>문화간의 대화는 서술의 대상이 되는 그 시대의 행위주체들의 문화적 의미체계나 가치관을 당대의 맥락에서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현재적 관점의 틀로서 과거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행위주체들을 그들 자신이 말하게 한다. 사료에 처리하는 태도에도 이런 접근방식이 적용된다.</p>
<p>《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기본적으로 산업화 초기의 영국에서 노동계급의 형성에 주목하고 있지만 그 연구방식이나 서술방식이 사회경제적 구조의 분석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 그런 의존은 사회경제적 결정론에서 벗어나고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톰슨은 계급의 형성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구조화에 따라 외적 결정 조건으로 환원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그 결정 조건은 계급형성의 최소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구조적 조건에서 계급경험이 축적되고 사회적 관계의 맥락에서 긴장하고 갈등하는 동적인 과정으로서 계급의 형성을 드러내고 있다.</p>
<p>톰슨이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드러내고 있는 계급의 형성과정은 두 가지 계급관을 비판하는 데서 나온다. 첫번째로는 이른바 전통적 맑스주의적 계급개념인데, 이는 사실 맑스 자신이 제시한 개념이 아니라 후대에 곡해된 개념으로, 생산관계에서의 위치, 즉 생산수단과의 관계에서 구조적으로 자동결정되는 계급개념이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확립에 따라 계급의 위치와 주체성이 확보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strong>‘계급 없는 계급투쟁’</strong>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역사적 진행과정은 ‘계급 투쟁’이 계급의 형성에 선행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p>
<p>두번째 계급 개념으로, 우파적 관점, 즉 구조기능주의적 계급이다. 이 관점은 정태적인 계급개념으로, 역사과정의 횡단면에서 파악된 정적인 사회구조 속의 한 위치와 그에 따른 기능과 역할이라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는 역사적 과정이라는 측면, 구조에 의하여 조건지어지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주체성으로 형성해나가는 계급의 동적인 움직임을 모조리 사상해버린 역사적 스냅사진만 보여준다. 그러한 횡단면에서는 계급의 주체적 형성을 조망할 지평이 설 자리가 없다.</p>
<p>톰슨은 계급을 ‘역사적 현상’이자 ‘사건(happening)’으로 본다. 그에 따르면 계급은 완결된 주체성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즉 사회경제적인 하부구조의 결정인에 의해서 완결된 동일성-주체성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계급은 먼저 역사적 관계의 시간적 장 속에 구조화되는 외적 조건에 반응하며 형성되어 간다. 그 과정은 동시에 계급의식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체성의 자기정립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톰슨의 계급개념은 실체론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론적인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계급갈등적 관계 속에서 계급주체성은 형성된다. 이러한 형성과정은 당대의 문화적 매개물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당대의 의미·가치체계, 저항의 문화적 전통 등 문화적 의미층을 통하여 계급의식은 주조된다. 사회경제적인 구조화의 결정인은 계급경험에 대한 최소한의 방향만을 지시할 뿐이다. 계급경험을 통과하면서 주체적으로 계급의식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계급이 자기를 만들면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p>
<p><strong>계급은 출발이 아니라 결과인 것이다.</strong> 출발은 계급경험의 조건일 뿐이며, 계급의식으로 무장된 계급은 결과이면서 과정이다. 톰스의 표현에 따르면, 계급은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이요, 이런 이해관계나 저런 이해관계가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 사이의 마찰이요, 운동 자체, 열기, 뇌성과 같은 소음〉(하권 562쪽)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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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두 싸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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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2 Apr 2008 08:00:58 +0000</pubDate>
		<dc:creator>altcre</dc:creator>
		
		<category><![CDATA[뱀에게발을]]></category>

		<category><![CDATA[아상블라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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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어떤 싸움의 記錄
&#160;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꺽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 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
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p>어떤 싸움의 記錄</p>
<p>&nbsp;</p>
<p>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br />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br />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br />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br />
아버지의 팔을 꺽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br />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br />
마루로 다시 기어 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br />
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작은누나의 비명,<br />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br />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 테야<br />
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 테야<br />
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 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br />
라일락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번 소리 질렀다<br />
이 동네는 法도 없는 동네냐 法도 없어 法도 그러나<br />
나의 팔은 罪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市場에서<br />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門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br />
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br />
<br />
(이성복, 全文)</p>
<p>&nbsp;</p>
<p>***</p>
<p>오학년이던 해 가을이었다. 외갓집의 망나니였던 외삼촌이 어떤 아저씨를 데리고 우리집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아저씨는 외삼촌의 사촌형, 그러니까 엄마 형제들의 사촌이었다. 그 작자는 언제나 술에 찌들어 살고 불량하고 거친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아직 젊어 혈기왕성한 외삼촌은 그 사촌형을 잘 본받아서 판단과 행동을 대부분 그 작자에게 의존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그날 모종의 &#8216;행동&#8217;을 작심하고 찾아왔었나. 초저녁이었고 술상이 차려져 술잔들이 몇 순배 돌아갔다. 술좌석의 시끄러운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우리는 옆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한참 지나서 어른들 이야기가 험하게 오고 가면서 고함 소리가 터졌다. 술상이 뒤엎어지고 방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악쓰는 소리, 욕하는 소리가 뒤섞이고 엉망이 된 좁은 방안에서 모두 일어나 주먹다짐과 몸싸움이 벌어졌고, 곧 미닫이 창호문은 발길질에 뜯겨 쓰러지고 다들 마당으로 나뒹굴었다. 방바닥이며 마당의 시멘트바닥에는 피가 떨어졌다. 누군가 피투성이가 된 듯했다. <strong>아버지의 이마 왼쪽에서 흐르는 피가 눈에 들어왔다.</strong> 순하던 아버지도 무척 취해서 두 사람과 일대이로 싸웠다. 마당에는 물 담아놓고 쓰던 드럼통이 있었는데, 누군가 그 나무덮개을 들고 휘두르고 집어던졌다. 엄마와 함께 그들을 말리고 있던 큰 누나가 격앙된 목소리로, 파출소 가서 순경을 불러오라고 나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strong>맨발로</strong> 숨이 차도록 뛰었다. 큰 길가에서 늘 보았던 파출소까지 득달같이 달렸다. 들어가자마자 허겁지겁 누군가한테 외쳤다. “싸움이 났어요. 아버지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고 있어요.” 그들은 누구랑 싸우느냐고 물었고, 삼촌하고 싸운다는 내 말에 <strong>낄낄대면서</strong> 그건 집안 싸움이 아니냐고 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서로들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렇게 한참 뜸을 들이고나서야 귀찮아 죽겠다는 듯 마지못해 둘이 일어나 모자를 쓰고 내 등을 돌려 세워 백차에 태우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우리집으로 향했고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방향을 일러주었다.</p>
<p>그때부터 나와 나의 형제들은 그 망나니 외삼촌을 더 이상 &#8216;외삼촌&#8217;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렀으며, 술버릇 나쁜 사람을 증오했다. 동생과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그 놈이 다시 우리집에 와서 깽판을 부리면 때려죽이겠다고 오랜 세월 별렀다.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엄마한테서 그 외삼촌의 사촌형이란 작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고, 우리집에 얼씬도 못하던 외삼촌은 오랜 세월 알콜중독으로 외할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내가 대학생이었던 언젠가 이미 알콜중독 말기로 숯처럼 검은 얼굴을 하고 우리집에 와서는 나를 보며 오랜만이라고 웃으며 반가워했다. 알콜 때문에 <strong>숯처럼 타버린 그 얼굴</strong>을 보면서 그토록 오래 증오했던 마음은 사라졌고 그의 인생이 불쌍해졌다. 얼마 뒤에 그도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남기고 외할머니보다 먼저 죽었다. 아버지는 그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음에도 더 오래 살다가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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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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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5 Apr 2008 19:04:18 +0000</pubDate>
		<dc:creator>altcre</dc:creator>
		
		<category><![CDATA[뱀에게발을]]></category>

		<category><![CDATA[겸손]]></category>

		<category><![CDATA[달]]></category>

		<category><![CDATA[동물]]></category>

		<category><![CDATA[불멸]]></category>

		<category><![CDATA[식물]]></category>

		<category><![CDATA[절반의 모습]]></category>

		<category><![CDATA[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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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불멸
&#160;
겸손은 아마 내 천성
그걸 그러나 스스로는 모르는 체
나는 항상 반쯤 드러내며 살아왔다
내가 가진 것의 반
또는 그보다도 적게.
모든 걸 아는 풀잎
모든 걸 아는 저 새들
모든 걸 아는 동물들
그리고 해와 달
만물이 항상
자기를 반쯤 드러내고 있듯이
나는 반쯤 드러내며 살고 있다
언제까지나
장차 내가 죽었을 때에도
그건 나를 반쯤 드러낸 모습일 터이니
그건 실로 죽은 게 아닐 것이다
나는 불멸이다.
(정현종, 全文)
&#160;
***
&#160;
열어놓은 창 밖에서 멀뚱하게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p>불멸</p>
<p>&nbsp;</p>
<p>겸손은 아마 내 천성<br />
그걸 그러나 스스로는 모르는 체<br />
나는 항상 반쯤 드러내며 살아왔다<br />
내가 가진 것의 반<br />
또는 그보다도 적게.<br />
모든 걸 아는 풀잎<br />
모든 걸 아는 저 새들<br />
모든 걸 아는 동물들<br />
그리고 해와 달<br />
만물이 항상<br />
자기를 반쯤 드러내고 있듯이<br />
나는 반쯤 드러내며 살고 있다<br />
언제까지나<br />
장차 내가 죽었을 때에도<br />
그건 나를 반쯤 드러낸 모습일 터이니<br />
그건 실로 죽은 게 아닐 것이다<br />
나는 불멸이다.</p>
<p>(정현종, 全文)</p>
<p>&nbsp;</p>
<p>***</p>
<p>&nbsp;</p>
<p>열어놓은 창 밖에서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저 달도 내가 불멸임을 안단다. 밤마다 울어대는 개구리들도, 날씨가 따듯해지니 방안 구석구석에서 출몰하는 그리마들도, 부엌에서 날아다니다 파리채에 얻어맞아 죽어가는 파리도, 이틀에 한번씩 불어제끼는 골짜기 바람도, 물앵두나무 가지에서 트는 새 움도, 점심상에 올라온 뒤꼍의 나물도, 늦은 오후 허공에 떼지어 우글대는 하루살이들도, 쓰레기 태우고 바람에 날리는 재도, 오늘 다섯 통이나 떠온 샘물도, 희희낙낙하는 아이들의 얼굴도, 내가 불멸임을 안단다.<br />
그래,<br />
나도 안다, 내가<br />
불멸임을.</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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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잠언 16장 22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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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7 Mar 2008 19:01:06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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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활을쏘다]]></category>

		<category><![CDATA[문화]]></category>

		<category><![CDATA[사치]]></category>

		<category><![CDATA[섬세한 사유]]></category>

		<category><![CDATA[인간의 발명]]></category>

		<category><![CDATA[축복]]></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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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문화로서의 사치는 &#8216;인간&#8217;과 &#8216;인간적 삶&#8217;의 디자인이자, 계속 갱신되는 발명이다. 조악한 디자인의 삶은 그 자체가 징역이요, 고도로 섬세한 디자인의 삶은 그 자체가 축복이 되겠다. 불행하게도, 그 디자인을 판별해주는 심판관을 어디에서도 만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좋은 디자인을 볼 줄 아는 안목에 이르렀다면, 그 안목 즉 섬세한 사유의 사치는 이미 그 사치 자체가 최상의 축복이다.
그리고, 그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문화로서의 사치는 &#8216;인간&#8217;과 &#8216;인간적 삶&#8217;의 디자인이자, 계속 갱신되는 발명이다. 조악한 디자인의 삶은 그 자체가 징역이요, 고도로 섬세한 디자인의 삶은 그 자체가 축복이 되겠다. 불행하게도, 그 디자인을 판별해주는 심판관을 어디에서도 만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좋은 디자인을 볼 줄 아는 안목에 이르렀다면, 그 안목 즉 <strong>섬세한 사유의 사치</strong>는 이미 그 사치 자체가 최상의 축복이다.</p>
<p>그리고, 그 불행과 다행이 순환하지 않으니, 이 또한 지고의 축복이 아니겠는가.</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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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홀로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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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4 Mar 2008 17:09:4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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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망치를들다]]></category>

		<category><![CDATA[관계맺음]]></category>

		<category><![CDATA[근본주의]]></category>

		<category><![CDATA[날것]]></category>

		<category><![CDATA[무교육]]></category>

		<category><![CDATA[이반 일리히]]></category>

		<category><![CDATA[홀로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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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교육은 그렇게 사람들이 서로서로 &#8216;받아먹는&#8217; 게 많게끔 만든다. 공모의 기술이다. 매체환경의 최면술도 마찬가지다. 공모를 하게끔 하고 공범자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8216;홀로움&#8217;을 위한 저항으로서의 교육은 무교육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이반 일리히에 가까이 간다. 교육은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의존성을 높여 간다.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이제 내가 나인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관계맺고 있는 타자의 시선이 규정하는 &#8216;지점&#8217;이 되어간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교육은 그렇게 사람들이 서로서로 &#8216;받아먹는&#8217; 게 많게끔 만든다. 공모의 기술이다. 매체환경의 최면술도 마찬가지다. 공모를 하게끔 하고 공범자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8216;홀로움&#8217;을 위한 저항으로서의 교육은 무교육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이반 일리히에 가까이 간다. 교육은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의존성을 높여 간다.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이제 내가 나인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관계맺고 있는 타자의 시선이 규정하는 &#8216;지점&#8217;이 되어간다. 나는 이제 주체가 아니라 지점이 된다. 그 지점을 향한 맹목적 질주가 주류사회의 에티켓이다. 세상에 관여하지 않기. 여기서의 세상이란 날것으로서의 인간, 그들의 세상이 아니다. 인간을 추상적 교환가치와 계량적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세상이다. 하나씩 하나씩 버려보자. 제대로 하려면 결국 근본주의가 필요하다. 모든 근본주의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8216;버리는 근본주의&#8217;가 필요한 것이지, &#8216;다 갖는&#8217; 근본주의가 아니다. 버리는 근본주의의 목적은 &#8216;날것&#8217;들의 자주적 독립이다. 날것이라고 하여 문화를 벗어난 야생의 인간이 목적인 것은 아니다. &#8216;문화를 뛰어넘는&#8217; 야생의 인간이라면 좋겠구나. 우리는 그런 버리는 근본주의를 권정생 선생이나 간디에서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였다지만, 니체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진짜 &#8216;동물&#8217;이 된다고 한다. 밧줄이라고 하지 않던가. 오히려 홀로 있을 때 비로소 &#8216;인간&#8217;이 된다. 실존적 깊이를 가진 &#8216;날것&#8217;으로서. 그러나 그 개인됨의 형식을 준 것은 &#8216;관계맺음&#8217;이다. 적이 이제 우군이 되어버린다. 나를 지점으로 묶어온 관계가 바람에 날려 휘발된 그 자리, 그 곳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날것도 없다. 날것이 되기 위한 해방의 에너지는 양방향으로 흐르고, 역방향을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더불어-관계맺음은 홀로움에서 비롯되며 홀로움은 더불어-관계맺음에서 파생된다. 이 둘은 서로를 먹여살리는 관계인 것이다. 이 모순이 눈부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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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랜 내 새 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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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4 Mar 2008 07:05:45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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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뱀에게발을]]></category>

		<category><![CDATA[오랜 내 새 집]]></category>

		<category><![CDATA[유목]]></category>

		<category><![CDATA[은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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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유목과 은둔
&#160;
의리(義理)가
낮은 샘가에 피묻은 채 머물고
온 허공에 수만 가지 꽃, 꽃들이
어지러이 피어
어찌 나갈까
저 먼 쓸쓸한 바다까지
가 마침내 내 두 아이를
만나 기어이
데리고 돌아올까
유목과 은둔의 집이여
오랜 내 새 집에.
( 김지하, 全文)
&#160;
***
&#160;
물론, 나의 &#60;은둔과 유목&#62;이, 김지하의 &#60;유목과 은둔&#62;에서 온 것은 아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이 서로 상관없이 태어났듯이. 김지하는 유목을 앞에 놓았고 나는 유목을 뒤에 놓았다. 유목이 앞에 있으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p>유목과 은둔</p>
<p>&nbsp;</p>
<p>의리(義理)가<br />
낮은 샘가에 피묻은 채 머물고<br />
온 허공에 수만 가지 꽃, 꽃들이<br />
어지러이 피어<br />
어찌 나갈까<br />
저 먼 쓸쓸한 바다까지<br />
가 마침내 내 두 아이를<br />
만나 기어이<br />
데리고 돌아올까<br />
유목과 은둔의 집이여<br />
오랜 내 새 집에.</p>
<p>( 김지하, 全文)</p>
<p>&nbsp;</p>
<p>***</p>
<p>&nbsp;</p>
<p>물론, 나의 &lt;은둔과 유목&gt;이, 김지하의 &lt;유목과 은둔&gt;에서 온 것은 아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이 서로 상관없이 태어났듯이. 김지하는 유목을 앞에 놓았고 나는 유목을 뒤에 놓았다. 유목이 앞에 있으면 불안하다. 나에게는, 유목의 수평적 날렵함은 은둔의 수직적 깊이에서 온다. 그 깊이의 하강에서 비로소 유목의 수평적 날렵함이 나비처럼 탄생한다. 정신의 자취인가? 몸의 기록인가? ”오랜 내 새 집”에 처박혀 나는 낡아가고 야위어간다. 마침내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갈 것이다. 그것이 나의 &#8216;은둔과 유목&#8217;이다. &#8216;씌어지지 않을 자서전&#8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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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동인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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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9 Mar 2008 05:36:0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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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망치를들다]]></category>

		<category><![CDATA[미성숙]]></category>

		<category><![CDATA[삐딱함]]></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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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삐뚜루 나가는 데, 삐딱해지는 데는, 사실 나이가 상관없다.  충년-지학-약관-이립-불혹-지천명 씨리즈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 씨리즈도 통속화되어서 그렇지, 공자가 직선·일방향적인 것을 말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곧바른 것이 좋을 때가 많지만(정말?), 삐딱한 게 더 자주 진실에 가까이 다가선다.  덤으로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중요한 것은, 아니 생각해볼 것은, &#8216;어떤&#8217;이 아닐까. &#8216;어떤&#8217; 삐딱함인지, &#8216;어떤&#8217; 건전함인지&#8230; 니이체선생은, 진리&#8217;이냐·아니냐&#8217;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삐뚜루 나가는 데, 삐딱해지는 데는, 사실 나이가 상관없다.  충년-지학-약관-이립-불혹-지천명 씨리즈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 씨리즈도 통속화되어서 그렇지, 공자가 직선·일방향적인 것을 말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곧바른 것이 좋을 때가 많지만(정말?), 삐딱한 게 더 자주 진실에 가까이 다가선다.  덤으로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중요한 것은, 아니 생각해볼 것은, &#8216;어떤&#8217;이 아닐까. &#8216;어떤&#8217; 삐딱함인지, &#8216;어떤&#8217; 건전함인지&#8230; 니이체선생은, 진리&#8217;이냐·아니냐&#8217;는 &#8216;어떤&#8217; 진리냐, &#8216;누구의&#8217; 진리냐로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아주 많은  삐딱함이 사실 &#8216;일반적으로&#8217; 건전하다. 청년적 겉멋이 아닌 &#8216;어떤&#8217;  퇴폐는  건전한 정신보다 옳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퇴폐조차 옳음을 완성하는 순간 건전한 성숙이 되어버릴 것이다. 곰브로비치의 소설에서 보듯이, 어떤 미성숙은 억압적인 성숙보다 해방적이다. 미성숙은 성숙으로 가는 출발점이나 과정이 아니다. 빨리 끝내버려야 할 통과의례가 아닌 것이다. 미성숙은 언제나 회복되어야 할  &#8216;맨 정신&#8217;이고 자유이며 고독이다.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있는 맨몸이다. 그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싸움의 기록이다. 성숙은 불화의 종식이요 저항의 소멸이다. 철이 들면 건전해지고 타협적이며 절충에 익숙해지고 적응을 잘 한다.  고유한 개인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자동인형이다. 세상에 자동인형이 넘쳐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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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얄독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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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3 Mar 2008 21:20:26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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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옷과밥과자유]]></category>

		<category><![CDATA[비린 것]]></category>

		<category><![CDATA[신비주의]]></category>

		<category><![CDATA[얄독하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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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냇가에 가면 얄독한 돌이 많다. 물수제비를 뜰 때는 납작하고 얄독한 돌을 던진다. 그 돌은 바로 자갈돌이다. 자갈돌은 대부분 얄독하다. 얄독하지 않을 때도 있구나. 뜨거운 여름 땡볕에 구워진 자갈돌은 얄독하지 않다. 여름 계곡 차가운 냇물에서 맨발로 실컷 놀다가 발바닥이 시려지면 따뜻하게 덥히기엔 안성맞춤이다. 얄독한 돌은 ‘동그랗고 차갑고 매끄러운’ 돌을 말한다. 다섯살 때 딸아이가 지은 말이다. ‘동그랗다’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냇가에 가면 얄독한 돌이 많다. 물수제비를 뜰 때는 납작하고 얄독한 돌을 던진다. 그 돌은 바로 자갈돌이다. 자갈돌은 대부분 얄독하다. 얄독하지 않을 때도 있구나. 뜨거운 여름 땡볕에 구워진 자갈돌은 얄독하지 않다. 여름 계곡 차가운 냇물에서 맨발로 실컷 놀다가 발바닥이 시려지면 따뜻하게 덥히기엔 안성맞춤이다. 얄독한 돌은 ‘동그랗고 차갑고 매끄러운’ 돌을 말한다. 다섯살 때 딸아이가 지은 말이다. ‘동그랗다’는 아마 구형 보다는 원형에 가까운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샘물을 뜨러 일주일에 한번 가족 모두 한재 샘터에 가곤 하는데,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늘 그늘이 지는 그곳에 얄독한 돌이 많았다. 그 샘터가 ‘얄독하다’가 태어난 고향이다. 나는 이 말이 참으로 좋다. ‘자갈’이란 단어는 돌의 발생학을 주로 보여주지만, ‘얄독하다’는 손에 쥐어지는 감촉에서 생겨난 기표다. 돌의 질감과 무게와 모양을 예민하게 받아낸다. 아이가 받아들이는 싱싱한 감각에 한국어의 모음과 자음이 어떤 필연성을 가지고 혀끝을 대본 것은 아닐까. 추상·관념어에 대해서는 소쉬르의 언어학이 자명하지만, 감각어에는 어떤 석연찮은 신비가 있어 보인다. 그 신비는 비리다. 맨날 풀만 먹다보면 몸이 비린 것을 원한다. 나는 신비주의에 질색하지만, 그 신비는 즐거워서 그냥 누리고 싶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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