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스터

March 12th, 2008

맹목은 자기 자신을 먹이로 하여 자신의 목숨을 부지한다. 그 눈멀음의 자기장 때문에 비로소 삶의 인력이 팽팽해진다. 눈먼 출생의 한계 때문에 비로소 눈뜰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눈 멀어서 그이의 아름다움은 완성된다. 눈 뜨니 그 아름다움은 덧없는 영원이 된다. 그것이 우주 안팎에서 인간이 하는 일이다.

물항아리

February 27th, 2008

부엌은 바닥이 마당보다 무릎 높이만큼 낮았다. 문짝 없는 문은 겨우 키 작은 어른 하나 출입할 정도로 낮고 좁았다. 언제나 침침하고 어둡던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으로 연탄이 쌓여 있었고, 바로 그 앞, 문가에서 마주 보이는 그 곳에 물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 키만한 높이였다. 이사다니면서 계속 가져온 것이었다. 그 항아리만 있었나. 부엌 옥상에는 자질구레한 작은 항아리들이 많았다. 그 모든 것들을 이사할 때 어떻게 옮겼을까. 내 기억으로는 트럭으로 이사한 적이 없었다. 손수레로 모두 옮겼다는 말인가. 그 먼 거리를.

물항아리에는 뚜껑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무쪽을 나란히 이어붙여 테두리를 둥글게 잘라 만든 뚜껑을 썼다. 그것이 오래되어 나무가 삭아 부스러졌다. 그 뒤부터 넓은 양은 쟁반 같은 것을 뚜껑 삼아 썼다. 뚜껑을 열면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가 물 위에 떠 천천히 움직이며 돌고 있었다. 물이 가득 찼을 때는 뚜껑의 무게과 물의 부력 사이에서 끼여 있다가 뚜껑을 여는 순간 물 위로 쑥 솟아올랐다. 도로 덮을 때는 가벼운 양은 쟁반이 물 위로 뜨려는 바가지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그 위에 무거운 냄비 같은 것을 올려 놓아야 했다. 항아리에다가 그렇게 식수를 받아 놓고 썼다. 그 물로 밥도 하고 국도 끓였다. 이사온지 얼마 안 되어서는, 기역자 골목 모서리집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물값을 얼마 냈다. 처음에는 양동이로 길어다 항아리며 드럼통에다 담았다. 조금 지나서 말랑말랑한 연두색 호오스를 골목을 따라 길게 이어놓고 물을 채웠다. 방안의 주전자가 비면 항아리에서 직접 떠 먹었다. 골목에서 놀다 목이 마를 때, 부엌으로 뛰어들어와 물을 떠 먹었다. 여름에는 그렇게 부엌까지 뛰어들어와 물을 마신 적이 헤아릴 수 없었다.

항아리의 물 높이가 점점 낮아진다. 부엌이 컴컴해서 항아리 속은 더 칠흑 같다. 아득하다. 눅눅한 그 속에 뭔가 꼭 있을 것 같다. 머리를 항아리 속에 들이밀고 웅웅거려 본다. 물 먹은 소리가 울린다. 물 높이가 바닥에 가까워지면서 바가지에 손이 닿지 않는다. 가슴을 항아리 주둥이 가장자리에 얹혀 매달린다. 항아리 안으로 깊숙이 윗몸을 숙인다. 팔을 힘껏 뻗는다. 바가지가 손에 잡힌다. 물을 조금 뜬다. 뒷통수가 항아리 주둥이에 부딪히지 않게 윗몸을 빼내며 부엌 바닥으로 점프하듯 착지한다. 바가지를 기울여 벌컥벌컥 마신다. 달다. 물이 입 양쪽으로 흘러 바닥에 떨어진다. 정강이에 튄다. 차갑다. 남은 물을 바닥에 그냥 휙 끼얹고 바가지는 항아리 속에 집어던진다. 항아리벽에 부딪히다가 물을 때리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렇게나 뚜겅을 얹는다. 마음이 급하다. 얼른 골목으로 튀어나갔다.

더그매 이웃

January 25th, 2008

해마다 겨울이면 45년이 넘은 이 옴팡집 더그매에 겨우살이를 하러 쥐가 기어들어온다. 그림책 <프레드릭>에 나오는 그런 녀석들이다. 한 놈인지 몇 놈인지 확실치 않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내 방 더그매에 아무런 기척이 없다. 그러다가 12월로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되면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쓰는 방(서재)은, 먼저 살던 사람이 안마당쪽으로 나 있던 외양간을 입식부엌으로 개조하고, 뒤꼍으로 나 있던 본래의 부엌을 개조해서 만든 방이다. 부엌이었을 때는 천장 없이 바로 보꾹 아래에서 부엌 살림살이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개조하면서 보꾹 밑에 합판으로 천장을 댄 모양이다. 그래서 그 사이에 더그매가 생겼고 언제 어떻게 알았는지, 겨울이 되면 방안 훈기 때문에 따뜻한 그 안으로 들쥐들이 월동하러 들어온다.

이 방 말고 본래부터 방이었던 방들은 보꾹 아래 천장이 없다. 그러니 더그매가 없다. 개조해서 덧댄 이 방 말고 원래 있던 방은 마루칸까지 합치면 모두 여섯 칸이다. 강원도 지방의 가옥구조는 모든 방들이 서로 맞붙어 한가운데로 모여 있는 형국이다. 겨울이 길고 몹시 추우니 적은 땔감으로 난방 효율을 높이려면 그렇게 방칸들을 가옥중앙으로 모으고 구들을 때야 했을 것이다. 남도쪽 가옥은 대청마루를 가운데에 두는 개방형 구조이어서 활짝 가슴을 펴고 있는 것 같다면, 이 지방의 가옥은 방들이 웅크리고 서로 껴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영동지방의 이곳은 영서지방보다 따뜻해서 전라북도 군산 기온에 가깝다. 골짜기라서 바닷가쪽보다 다소 추운 듯하지만 그래도 서울·경기도보다는 훨씬 따뜻하다.

처음 이사해오던 겨울에 더그매 쥐돌이들의 부스럭대는 소란스러움을 겪으면서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추억에 잠기곤 했다. 그 시절 서울 변두리 가난한 집에는 더그매가 있어서 겨울만 되면 쥐들이 겨울나기를 하러 들어왔고, 우리들은 그 녀석들의 소란스러운 기척을 들으며 저녁밥을 먹고 텔레비전 주말의 명화를 보다가 부스럭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작년 겨울에는 쥐들이 들어오지 못해서 조용한 겨울을 났다. 이 골짜기에 겨울이면 바람이 심해서 바람막이 비닐을 베란다처럼 빙 둘러쳐서 아마 쥐들이 들어올 수가 없었으리라. 이번 겨울에는 사정이 생겨서 바람막이 비닐을 정비하지 못하는 바람에 다시 통로가 생겼다. 그리하여 다시 쥐돌이 이웃들과 함께 겨울을 나게 되었다. 더그매 친구들과 함께 겨울을 나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비위생적일 일도 거의 없다. 더러 시끄럽기도 하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오히려 녀석들의 부스럭대는 소란스러움이 객관적 상관물이 되어 옛 추억을 재생한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마음이 따뜻해져 감동하기까지 한다.

얼마 전에 알았는데, 그 녀석들이 안마당쪽 처마 어디 구멍으로만 드나드는 게 아니었다. 안방에 앉아 있던 참에, 뒤꼍으로 난 지게문의 문살을 타고 처마쪽으로 기어올라가는 것을 목격했다. 뒤꼍에 백열등을 켜놓아서 문살을 타고 올라가는 꼬리와 엉덩이가 선명한 그림자로 비쳤다. 더그매로 들어가는 통로가 여럿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녀석들이 될 수 있으면 깨끗하게 겨울을 났으면 한다. 천장에다 제발 똥은 너무 많이 안 쌌으면 좋겠고, 거기서 죽어 썩어가면서 냄새를 피우거나 구더기가 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공연한 걱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거기서 그 놈들이 죽을 까닭이 없다고 안심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녀석들과 함께 지내오고 있다. 이제 충분히 익숙해져서 고요한 산골의 깊은 밤에 알맞은 어울림으로 귀에 곰살궂게 느껴진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눈이 꽤 와서 쌓여 있는지라 이 놈들이 나가봐야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해올 수도 없을텐데 어디 갔나, 궁금하다. 왜 저렇게 조용하지. 모두 어디로 이사를 갔나. 혹시 죄다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고요한 밤에 책상에 앉아 책 보다가 잠시 멍하니 감고 눈을 쉬게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때마다 고요한 더그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정말 궁금하다.

서울에서 두어 주 지내다 온 아이들과 함께 외출을 하려고 마당에 먼저 나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찬 바람 때문에 어디 부셔진 것은 없나 마당과 집채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이들 방문앞 툇마루 아래쪽에 누워 있는 아주 살찐 쥐 한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몸이 온전하다. 고양이가 잡아서 먹다가 버려두고 간 것이 아니다. 털은 깨끗하고 토실토실하게 살쪄 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녀석이 바로 더그매에 살던 놈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 녀석이 죽어서 여기에 이렇게 등을 구부리고 누워 있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이 아이들을 불러다가, 이 녀석이 바로 아빠 서재 더그매에서 살던 놈인데, 글쎄 이렇게 죽었다고 호들갑을 떤다. 아이들이 가운데에 죽은 쥐를 두고 마주 앉아 살펴본다. 도대체 그 녀석이 왜 죽었을까. 고양이한테 잡힌 것도 아니고 굶어죽은 것도 아니다. 마당을 벗어나면 논이며 밭에는 온통 눈이 쌓여 있어서 무엇을 잘못 집어먹고 죽을 수도 없다. 며칠 동안 틈만 나면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녀석의 죽음은 정말 수수께끼다.

겨울이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웃은 떠났고, 나는 이웃을 잃었다.

탕진할 시간이 많지 않다

December 13th, 2007

한 어부가 담뱃대를 피워물고 느긋하게 고깃배 옆에 누워 있었다. 한 사업가가 그 어부를 보고 물었다.
“왜 고기를 안 잡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거요?”
“오늘 잡을 만큼은 다 잡았소.”
“아직도 많이 잡을 수 있는데 왜 더 잡지 않소?”
“더 잡아 뭐하게요?”
“돈을 더 모아야지요. 그래서 배에다 모터를 달아서 더 먼 바다로 나가면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지 않겠소. 그리고 더 튼튼한 그물을 사서 훨씬 더 많은 고기를 잡아 팔면 그 만큼 더 벌게 되잖소. 머지 않아 배를 여러 척 사들일 수 있을 것이고 대규모 선단을 꾸릴 수도 있소. 그렇다면 당신은 나처럼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단 말이오.”
“그렇게 해서 그 다음엔 뭘 합니까?”
“뭐 하냐구요? 그 다음에는 인생을 느긋하게 즐기면서 사는 겁니다.”
“그럼, 당신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참 쉽고 간단하다. 담백한 이야기다. 심오하고 복잡한 얘기는 전혀 없다. 저 어부처럼 사는 것이, 잘 사는 것(Well Being)이다. 에리히 프롬 말마따나, 소유(To Have)가 아니라 삶(To Be)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주로 물질적 부의 축적만 얘기하고 있지만, 가치 전도의 다른 레퍼토리 곧, 외모, 유흥, 지식, 명성, 지위, 권력 따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고 보면, 저 이야기를 알아듣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말이 된다. 쉽고 간단한 것이 오히려 더 잘 안 보이도록 머리와 마음이 고안되어 있다.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더 심하다. 그렇다고 가방끈 짧은 이들이 나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가방끈이 긴 사람들은 머리통과 마음이 따로 놀지만, 가방끈 짧은 이들은 아예 머리통과 몸통이 온통 홀려 있다.

그렇게 사업가의 전당포에 영혼을 저당잡히고 인생을 탕진하고 있다. 그리고도 자기가 그러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고 없이 제 수명 다 누리고 살아도, 탕진할 인생이 많지 않다.

죽은 짐승 가죽

November 9th, 2007

그가 살던 시대에도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저술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단 한 줄도 써놓지 않았다. 어떤 이가 그에게 왜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소크라테스는 대답한다.
“양피지에 무언가를 끄적거려봐야, 내가 쓴 것보다는 오히려 양피지 자체가 더 값이 나갈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서 같은 질문을 받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내 생각을 죽은 짐승의 가죽에다 써놓고 싶지 않아. 차라리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고귀한 영혼에다 새기고 싶네.”

글이라는 수단으로 정신을 재현한다는 것은 왜곡이요 족쇄요 악이라는 생각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플라톤부터 루소를 거쳐서 레비스트로스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글과 글자보다는, 목소리와 음성이 더 진리의 원본이다. 생각이 정신의 음성이나 목소리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현전한다는 것은 굴절이나 지연 없이 즉각적인 투명성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문자언어는 그런 자기현전의 투명성을 지니지 못하고 목소리를 지연한다. 이러한 현전의 형이상학, 목소리-로고스 중심주의는 자크 데리다의 <오브 그라마톨로지>에서 자세하게 폭로되고 전복된다.

주체가 결국 사회적 관계의 유동적 다발에 지나지 않거나 그런 다발로 해소된다는 통찰은 서구의 구조주의이후 사상의 주테마이지만, 이미 오래전 대승불교 반야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 통찰을 수용한다고 할 때 한 개인이 주체 속으로 침잠하여 내면을 고요하게 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그의 실체적 정체성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하이데거적인 의미에서 존재의 탈자적 개방성으로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데리다의 ‘문자학’이나 정신분석학의 주체이론에 연관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표현과 재현수단의 과잉 속에서 지극히 소란스러운 야단법석의 시장통 같은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미디어는 끊임없이 입에 거품을 물고 지껄이고 떠벌이고 고함을 치고 아우성을 친다. 소음 과잉의 시대에 살며 다들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잃어버렸다. 이 또한 자본주의 물신사회의 귀결이다. 매체환경의 다변화는 더욱더 그런 분위기를 촉진한다. 이제는 매체가 없어서, 수단이 충분치 못해서 표현하지 못하거나 전달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죽은 짐승의 가죽도 모자라서, 나무 깎아 만든 종이도 모자라서, 강을 끊고 산을 깎아 댐 만들고 위험한 원자력발전소 만들어 생산해낸 전기, 그 전기적 신호의 흐름 - ‘디지털 가죽’을 만들어서 이제 소음과 소란의 시·공간 격리도 없애버렸다.

(물론 아직도 지구촌의 많은 지역에서, 또 특정한 정치적 상황에서 표현과 재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마음 속에 내면을 진득하게 담고 있지 못한다. 지껄이지 않고 있으면 참을 수가 없나 보다. 누군가 들어주지 않으면 미치는가 보다. (지껄임의 해방성이 때로는 필요하기도 하지만) 입 다물고 마음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서 고요하고 고독하게 침묵 속에 침잠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네트워크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카운터네트워크(counternetwork)도 필요하다. 죽은 짐승 가죽에 무언가를 쓰고 싶지 않다는 소크라테스의 농담은 나에게 그렇게 들렸다.

한 아이가 잠을 잔다

April 4th, 2007

한 아이가 잠을 잔다. 씻고는 자는 건지. 흙때가 낀 채 얼어터진 손등을 더운 물로 불려 깨끗이 씻겼으면 좋으련만. 다른 식구들도 모두 잠들었다. 좁은 ‘하꼬방’에 온 가족이 빈틈 없이 가로·세로로 누워 고단한 하루의 삶을 접고 있다. 아이는 문틈으로 찬바람 솔솔 들어오는 방문 곁에서 자고 그 안쪽으로 동생, 엄마, 아버지가 순서대로 자고 있다. 아랫목으로 아이의 작은 누이가 잠들어 있고, 아궁이가 시원찮아 연탄불이 잘 들지 않는 윗방에 큰 누이가 이불로 온 몸을 칭칭 둘러싸고 잠들어 있다. 아이는 오늘 먹고 싶은 것을 얼마나 먹었을까. 학교 끝나고 교문을 나서면서 문방구에서 파는 떡볶기며 오뎅이며, 튀김, 핫도그, 또 리어커에 다트를 달고 나와 파는 번데기 장수들,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먹고 싶은 것 먹어보기라도 했을까. 아이는 잠을 잔다.

아이의 잠은 살그머니 일어나, 아이의 얼굴을, 자궁 속에서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는 아이의 몸을, 때가 찌든 겨울 내복을 뚫고 아이의 알몸을, 그윽한 시선으로 살펴본다. 아이는 싫컷 놀았을까. 엄마·아버지의 사랑 어린 관심을 실컷 누렸을까. 아이의 요즘 관심사는 무엇일까. 딱지치기, 구슬치기, 팽이돌리기, 썰매타기, 바둑, 번갈아가며 계절마다 돌아오는 놀이에서 지금 아이의 관심을 끌어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잠은 아이의 몸에서 벗어나 오늘 아이의 하루를 한 발자국씩 따라가 보기로 작정한다. 겨울 아침 꿈처럼 달콤한 잠의 유혹에서 겨우 벗어났다가, 짧은 하루를 보내고 다시 잠들어 고요한 한밤중 이불 냄새와 낡은 도배지 냄새가 섞여 있는 방안 공기에, 그 조그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을 보태며, 아이는 잠을 자고 있다.

무어(Moor)인 친구

March 20th, 2007

cover마르크스 평전스물한두 살때 소련의 프로그레스(Progress)에서 나온 영어판 전기 《칼 마르크스 전기 Ⅰ·Ⅱ》(김라합, 소나무, 1998)를 읽은 적이 있다. 업적의 서술과 찬양, 꼭 신약을 읽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시절 ‘교도’로서 ‘맑스교’의 교주 일대기를 읽은 셈이다. 세월이 흘러 소련과 동유럽의 ‘무늬만 사회주의’가 해체되었고, 남한 자본주의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배 아래 놓인지도 몇 년이 지나,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프랜시스 윈(Francis Wheen)이 ‘인간’ 맑스의 초상화를 그린 《마르크스 평전 Karl Marx》(정영목, 푸른숲, 2001)을 읽었다. 그 때 나는 한 ‘동지’의 인생 이야기를 읽었다. 다시 또 몇 해가 지나 이 산골에 살면서 이번에는 얼마 전에 나온,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가 쓴 《마르크스 평전》(이효숙, 예담, 2006)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나는 이제 ‘친구’의 인생 이야기 종합편을 읽는다. 이것 말고도 ‘친구’에 관한 재미나고 애정어린 야담 《유령의 사랑》(손석춘, 들녘, 2003)을 읽은 바 있다.

자크 아탈리의 평전은 크게 세 가지를 날줄 씨줄로 엮어 놓았다. 맑스의 개인사를 따라가면서 각 시기의 대외적인 활동과 저작 활동, 여기에 당시의 시대상황을 적절하게 끼워 놓았다. 기본적으로 맑스의 지적·사회적 활동 전체에 대해서 우호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맑스 전기·평전의 역사는 맹목적 찬양, 악마에 대한 저주, 두 극단 사이의 절충, 이 세 가지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크 아탈리는 두 극단 사이의 어설픈 절충이 아니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한다. 프랜시스 윈이 주로 인간적인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아탈리의 평전은 맑스의 인간적인 면모와 지적 성취, 시대적 상황을 균형 있게 서술하고 있다.

내가 놀라웠던 것은, 시기적으로 기복이 있긴 하지만, 극도의 궁핍 속에서도, 그 궁핍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그렇게도 지속적으로 지적 탐구와 저술 활동을 줄기차게 유지해낼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자식을 잃은 슬픔 같은 인간적 고통으로, 연구와 저술에서 손을 놓은 적이 몇 번 짧게 있기는 했지만, 연구와 글쓰기는 초지일관으로 줄기차게 이어졌다. 이것은 아무나 못한다. 머리를 쪼아대는, 마음을 쪼아대는 고통거리에서도 오로지 자기 주제에 몰두할 수 있는, 그것도 늘 괴롭히는 궁핍을 해결해줄 수도 없는 주제에 그렇게 몰두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그는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벌여 놓았는데 거의 대부분을 정리해 완결짓지 못하였고, 적은 부분만 겨우 매듭지어 출판했다. 독일에서 출간되고 있는 100여권의 전집(MEW)에서 그의 생애에 출판된 것은 <자본 1권>과 몇 가지밖에 안 된다. 이렇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안정된 재산이나 고정된 수입이 없이 그냥 맨몸·맨손으로 가족과 함께 생계를 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생계 때문에 당대의 시사적 이슈에 관한 일간지의 기사와 논설을 쓰느라 시간을 상당히 뺏겼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그의 완벽주의 때문이었다. 그는 문헌과 자료를 찾아 읽고 분석하고 요약하고 발췌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쓰고 또 썼다. 그리고 고치고 또 고치고 한없이 고쳤다. 스스로 기획해서 쓰는 원고도 그러했고 출판사에 약속했던 원고도 끝없이 고쳤다. 탈고를 미루고 또 미루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고치는 바람에 저술 계획의 대부분을 끝내 완성치 못했다. 완성된 원고는 정말 극히 적었다. 탈고를 못하는 완벽주의를 이겨내는 일은 사실 글쓰기의 기초에 속하는 연습이다. ‘천하의’ 칼 맑스조차도 글쓰기의 기초에서 터득해야 하는 ‘완벽주의와 끝없는 싸움’에서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은 놀랍지 않은가. 놀랍긴 뭐가 놀라운가. 세상사 다 그렇다. 대가들도 끝끝내 기초를 마스터하지 못한다. 뭐든지 제대로 하려면 결국은 완벽주의와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지 않겠는가.

맑스의 성질머리나 품성은 나랑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그런 대목을 만나면 낄낄대며 읽는다. 어쩌면 책상물림들의 특유한 성품으로 공통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확신이 서지 않았을 때는, 충분히 공부해서 완전한 이해에 이르지 못했을 때는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의심스러운 모든 것에 대해서 회의한다. 지적인 양심과 엄격함에 충실하다. 이럴 때는 마음이 개방되어 있고 합리적 자세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나름대로의 깨달음에, 이해의 경지에 이르면 이제는 확고하고 결연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더 이상 의심과 회의는 없다. 유연함을 잃지 않다면 큰 문제가 없으나, 그런 확고함이 경직된다면 이제 독선까지 나아가게 된다. 고집까지 곁들인다. 대개 보면, 이런 사람들이 실제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이념(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에는 옳고 덜 중요한 것에 틀리는 경우가 많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맑스는, 문자 그대로 단칸방은 아니지만, 가장 궁핍하던 소호시절에는 거의 단칸방 같은 집에서 아이들과 복작대면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게 가능한가? 내 경험으로는 거의 가능하지 않다. Jenny von WestphalenJenny von Westphalen온 가족들이 극진히 배려해준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맑스는 그런 배려를 받았나 보다. 그런 배려가 없다면 사실 불가능하다. 그는 일상잡사에서는 물론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귀족 출신 아내 예니(Jenny von Westphalen)가 살림을 전혀 못했지만, 가정부 데무트(Helene Demuth)가 있었다. 데무트는, 손석춘의 소설에 따르면, 지적인 성장을 통해서 맑스의 동지이자 동반자가 되었다고 한다. 아내 예니도 역시 동지이며 동반자였다. 맑스와 예니는 평생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계속 이어지는 궁핍 속에서 기복이 있었다. 특히 예니가 친정(독일 고향에 잠시 체류)에 가 있어야 했을 때 데무트의 몸 속에 맑스의 씨앗이 뿌려진다. Helene DemuthHelene Demuth아이(아들)는 나중에 사생아로 태어난다. 예니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된다. 이 시기에 맑스 부부는 매우 불화한다. 데무트는 아이를 자기가 키울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어 다른 데다 맡겨 키운다. 맑스는 평생 한번도 자기와 데무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보지 않았다. 나쁜 놈이다. 바람 피운 것까지는 같은 남자로서 봐줄 수 있지만, 아이 한번 보지 않은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교도’로서, ‘동지’로서 읽었던 이전과는 달리, 나는 이제 ‘친구’로서 그의 평전을 보면서, 이 평전과 공정하게 쓰인 다른 여러 평전들이 들려주고 있는 것처럼, 여지껏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칼 맑스가 평생 골몰했던 것이 정말 노동계급의 해방이었나, 하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든다. 과연 노동계급의 해방이라는 필생의 문제의식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분석하고 연구했는가? 그리하여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대한 전망을 모색한 것일까?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해서, 팜플렛과 저술을 쓰고 인터내셔널을 만들어 활동을 했던 것일까?

그러한 나의 회의를 두고 엉뚱한 오해는 하지 말라. 거의 인신공격과 저주에 지나지 않는 평전의 저자들이 지껄이듯 그런 불순한 의도를 추정하지는 말라. 그런 악의적인 평전들의 내용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회의한다고 해서 그의 가치와 성취를 전혀 훼손하지 않는다. 나의 회의는 그의 인생 전체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간단하게 그의 필생의 화두를 설명해 버릴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화두를 끝까지 자의식하면서 몰두했을까? 그 필생의 화두는 채우면 채울수록 비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평생 그의 마음 속에서 목적의식으로 집념으로 품어온 화두이지만, 그것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점점 투명해져 가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평전에서 읽혀지는 맑스도 이런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맑스는 예니가 죽은 뒤인 말년에 아프리카로 긴 여행을 떠난다. 우리가 흔히 보는 그의 사진에 나오는 긴 머리와 수염을 삭발해버린다.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았다. 세 딸의 죽음을 차례차례 겪고나서 숨을 거둔다.

“나는 거시적 세계보다 훨씬 흥미로운 미시적인 이 작은 세계, 가족 생활, 아이들 소리, 이 모든 것을 휴식이라고 부르네.” - 맑스

고장난 재봉틀 고쳐요

January 13th, 2007

이런 시골에는 아직도 잡다한 물건 고치는 아저씨가,
고장난 재봉틀 고쳐요,
하며 동네방네 돌아다닌다. 옛날처럼 등에 연장을 짊어지고 걸어다니며 외치지 않는다. 1톤 트럭을 타고 다닌다. 녹음된 고함소리가 확성기에서 들려온다. 진작에 사라진 줄 알았는데 여태 살아 남아 있다. 수요가 적겠지만, 우리 세대를 기준으로 볼 적에 윗세대들, 아저씨·아주머니, 할아버지·할머니들만 주로 남아 있는 시골에는 지금도 물건을 ‘고쳐쓰며’ 살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들도 주로 가난한 시골주민이다. 시골 주민도 양극화가 되어 있다. 아주 가난해서 도시로 나가지 못하는 층과, 가진 땅이 많아 도시 중산층 이상으로 사는 층이다. 중간층은 이미 80·90년대에 다 도시로 나가서 도시서민으로 산다.

시골 부모의 자식세대들은 도시에서 상품이 넘쳐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소비를 만끽하며 살고 있다.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버리고, 고장나면 당연히 버리고, 유행이 지났다고 버리고, 기분 전환한다고 멀쩡한 것들을 버린다. 도시의 아파트 쓰레기처리장·폐품보관장소에 가보면 한살림 차리고도 남을 것이다. 저렇게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로 쓰기 위해서 부부가 ‘풀타임’으로 번다. 풀타임으로 버느라 시간이 늘 부족하다. 가족들이 하루에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그나마 얼마 안되는 시간에 이번에는 현대의 최면술인 텔레비전에 영혼을 헌납한다. 십여 년전부터 헌납할 곳이 하나 더 생겼으니, 인터넷이다. 돈 버느라고 기력이 쇠진해서 섹스할 시간은 있을까? 부실한 정자와 부실한 난자가 만나 아이 하나 겨우 낳는다. 아이에게 자연결핍증은 예정되어 있고 커서는 경쟁력을 쟁취해야 하는 지상의 과제가 주어진다. 풀타임으로 벌어 체면 유지와 아이들 학원비로 상당 부분을 쓰고, 음식은 즉석가공식품 위주로 먹고들 산다. 주말에 잠시 교외로 나가, 돈 쓰며 잠깐 놀다가, 승용차 안에서 더 많은 시간 갇혀 있다 돌아오면서, 여가를 즐겼다고 믿는다. 통장의 빚은 줄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한다. 돈 쓰는 재미가 없으면 어떻게 사냐고. 허!

골짜기 마지막집 쪽으로 올라갔던 트럭이 이제 막 내려온다. 확성기에서 들려온다.

고장난 재봉틀 고쳐요.
고장난 마음 고쳐요.
고장난 정신 고쳐요.
고장난 문명 고쳐요.

기침소리

December 29th, 2006

감기 걸린 여섯 살 딸아이의 기침소리.
말하자면, 아직도 ‘문학 같은 것’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런 기침소리, 밤새 잠 제대로 못 이루고 콜록거리는, 감기 걸린 여섯 살 딸아이의 기침소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기작가와 기능공

June 6th, 2006

미국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Joyce Carol Oates)가 쓴 <작가의 신념 The Faith of a Waiter> (송경아, 북폴리오, 2005)이란 책에 보면, 글을 쓰는 데 기술이 없으면 주관적 자기세계에만 빠져 있는 아마추어이고, 기술은 있는데 자기 세계가 없으면 단지 기능공일 뿐이란 내용이 나온다. 당연한 얘기다. 기술에만 매몰되면 작가는 기능공을 넘어설 수 없고, 자기 세계에만 빠져 있다면 그저 일기 작가이거나 자아분석가에 그치고 만다. 기술을 연마하는 일은 학습과 훈련이다. 이것은 의지와 집념으로 당겨야 한다. 즐기는 일이 아니다. 주관적 자기세계에 푹 빠져서 글을 쓰면 충분히 즐기며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발전이 더디다. 두 가지를 아울러 갖추어야 비로소 예술가인 작가가 된다. 기술과 열정 둘 다 필요하다.

기능공은 결함 없는 소설이나 시편을 생산해낼 수 있다. 근래에 전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문창과가 생겨나서 상당히 많은 졸업생을 내고 있다. 4년제 대학교육을 받고도 다시 문창과에 들어가서 기능공 수련을 겪는다. 기능의 습득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성실하면 당연히 등단도 할 수 있고 출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물은 대량생산된 상품과 별 차이가 없다. 누가 읽는가? 아무도 안 읽는다. 독자는 규격품을 원하지 않는다. 출판목록에 등록되고 곧 영원히 잊혀진다. 살아 생전에는 무명이었다 사후에 진가를 인정받는, 그런 경우에도 속하지 못한다.

자아분석가나 일기 작가는 많다. 예전에 비해서 글 쓰는 사람이 적어졌다고 해도, 아직도 많은 이들이 뭔가를 그저 끄적거린다. 이들이 바로 일기작가·자아분석가들이다. 등단이나 출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 생전에 수백 권의 일기-글을 쓰고 단 한 편도 세상에 드러내지 않은 일기작가가 많다. 그들은 그저 즐겨 썼고 취미로 썼고 습관이 되어서 썼다. 이들의 글쓰기는 형식과 표현의 질이 문제 되지 않는다. 기록이고 습관이고 생활의 방편이다. 심리치료에도 일기 쓰기가 쓰인다. 글쓰기를 통해서 자아를 분석하고 치료하는데 이용된다. 이런 글쓰기 또한 형식이나 표현의 질보다는 컨텐츠에 주목한다. 치료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블로그라는 매체환경은 더 많은 이들을 끄적거리게끔 한다. 30년이 넘도록 명성이 자자한 영어권의 유명한 글쓰기 길잡이책인 <글쓰기 생각쓰기 On Writing Well>(이한중, 돌베개, 2007)에서 윌리엄 진서(William Zinsser)는 글쓰기 도구가 발달하고 글을 발표할 매체환경이 풍요로워진 이 시대에 글쓰기에도 양극화가 깊어졌다고 한다. 곧 빈익빈 부익부,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도구(컴퓨터 워드프로세서)의 발달과 매체 환경(인터넷 블로그)의 발달로 더욱 더 잘 쓰게 되는 반면, 못 쓰는 이들은 같은 이유로 더 못쓰게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온라인상의 글쓰기는, 양은 쓸데없이 길어졌지만 질은 형편없이 떨어진다. 아마도 수많은 일기작가나 자아분석가들은 이 양극화의 ‘부’가 아니라 ‘빈’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려고 하는 이들, 즉 세상에 내보내 자기의 작품을 대중에게 읽히고자 하는 이들은 기능공 수업과 일기 작가의 즐거움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그저 즐겨 쓰자니 발전이 더디고, 학습과 훈련에만 전력하자니 글쓰기에 열정이 당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쓴 것이 작품이 되어야 하고 예술이 되어야 하니 경직되기 시작하고 상상력에 압박을 느낀다. ‘본격적으로’ 써보려고 하기 전에는 그저 즐겁게 쓰기 때문에 경직되지 않았다. 글 가지고 잘 놀았다. 그저 내키면 쓰고 안 내키면 안 쓰면 된다. 습관이 되었다면 습관적으로 쓸 것이다. 이런 글쓰기에도 장기적인 발전이 있지만 눈에 띄는 속도로 발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술적 형상화에는 이르지 못한다.

딜레마는 균형을 확보함으로써 해결된다. 균형을 확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규칙적으로 쓰는 것 즉, 날마다 일정량을 꾸준히 쓰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에는 특별한 지침이 없다. 쓰고 또 쓰면 된다. 다음으로, 작가 내면의 비평가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비평가는 자아에 축적된 예술적 교양의 총체다. 마지막으로 그 비평가의 심미적 감식안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 세번째 것은 기존 작품의 깊고 넓은 체험에서 온다. 장기적인 과정이다. 두번째 내면의 비평가 다루는 요령에 대해서만 언급해본다.

내면의 비평가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기능공 수업 교실이다. 비평가는 기술의 차원에서 글쓰기의 질을 끌어올린다. 문제는 내면의 비평가를 잘 다루지 않으면 글쓰기를 망친다는 점이다. 그는 이중적인 존재다. 글쓰기를 더 낫게 만들 수 있지만 망치게 할 수 있고 아예 글을 못쓰게 만들기도 한다.

내면의 비평가를 다루는 방법의 핵심은 그가 등장해야 할, 제 구실을 가장 훌륭하게 해낼 시기와 단계에 나오게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착상과 구상, 그리고 초고를 완전히 쓸 때까지는 절대로 비평가에게 나올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되든 안되든, 질이야 어떻든 간에 초고를 완전히 끝낼 때까지, 절대로 비평가에게 굴복해서는 안된다. 처음 착상에서 초고를 일단 끝낼 때까지는 상상력과 창조성을 대담하게 극단으로 밀어부친다. 아직 모든 것이 제대로 싹도 트지 않은 단계다. 잘 자라게 해서 꽃을 피우게 하고 충분히 뻗어 오르게 해야 한다.

만일 초고를 일단 다 써내기 전에 비평가선생이 오면 그는 기존의 관습과 규범, 온갖 규칙을 가지고 재단하고 평가하려 든다. 상상력의 폭과 깊이를 규격에 맞추어 잘라낸다. 비평가가 가장 쉽게 자주 오는 때도 바로 이 때고, 마음 약한 작가지망생들과 초년생들은 가끔씩은 그 내면의 비평가를 물리치기도 하지만 대부분 굴복하고 만다. 그 때문에 얼마나 작가의 꿈을 가진 지망생이 일찌감치 절망하고 포기하고 마는가. 내면의 비평가가 나오는 한 우리는 글쓰기를 놀이로 할 수 없다. 예술은 먼저 놀이로 시작해야 하는데, 비평가는 놀게 하지 않는다. 위대한 창조성은 언제나 놀이에서 싹 트고, 기존 규범에 대한 도발·전복·파괴에서 온다.

초고를 일단 다 써낼 때까지는, 내면의 검열·비평가가 온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포착해 내어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일단 그가 온다는 것이 의식되면 그때부터 각자 나름대로의 처방과 퇴치전략을 끌어낼 수 있다. 무엇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일이 가장 우선이다. 일단 식별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누구나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전략을 짜낼 수 있다. 글쓰기의 이력이 쌓여가면서 비평가 퇴치전략은 하나씩 하나씩 늘어가게 된다. 글쓰기는 결국 심리 게임인 것이다.

비평가는 예술적 창조과정의 맨 나중에 등장해야 한다. 최소한 초고를 한 번 이상 고쳐 쓴 다음부터 나와야 한다. 이 단계부터는 되든 안 되든 해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중도 포기, 좌절을 예방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내면의 비평가가 등장하여 자기의 역할을 해낸다. 예술적 지식과 심미적 감식안을 최대한 발휘해서 초고를 여러 번 고쳐 쓰게 만들고 비로소 작품으로서, 예술로서의 품격을 갖추는데 도와주고 이끌어간다. 독창성과 창조성으로 충만한 초고를 형식과 표현이라는 미학적 차원으로 완성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