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Tagged ‘문화’

계급은 구조가 아니라 사건이다

Sunday, July 20th, 2008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상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하《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상·하》, E. P. 톰슨, (나종일 외, 창작과비평사, 2000)

여름 피서용으로 아주 적당한 책이다. 상·하권 모두 합쳐 1000쪽이 넘는 읽을거리가 ‘푸짐한’ 책이다.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서구 역사학에서 신문화사적 전환의 선구였다. 동시에 사회사적 역사서술의 중요한 한 면모인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한 전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말하자면 신문화사와 사회사의 모범적인 종합적 균형이랄 수 있겠다.

프랑스 아날학파에서 시작된 구조사–사회사적 역사서술은 사회과학적 모델에 입각해서 역사서술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당대적 사회과학적 이론과 개념틀을 가지고 역사인식을 이끌어낸다.이런 접근은 과거의 문화를 현재의 관점으로 재단하는 근본적으로 ‘독백적’인 역사서술이다. 에드워드 헬렛 카가 표현했듯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할 때의 그런 대화에는 이르지 못하는 역사서술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서 톰슨의 역사는 그러한 대화를 추구한다. 마치 미하일 바흐친의 대화론이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에서 분석해내는 다성악 구조에서처럼 과거의 문화 주체들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 즉 사료에 쓰여진 과거의 문화적 의미주체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역사서술이 이루진다. 현재의 문화와 과거의 문화가 동등하게 참여하여 대화를 이루는 대화공간 자체가 바로 역사서술인 것이다.

문화간의 대화는 서술의 대상이 되는 그 시대의 행위주체들의 문화적 의미체계나 가치관을 당대의 맥락에서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현재적 관점의 틀로서 과거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행위주체들을 그들 자신이 말하게 한다. 사료에 처리하는 태도에도 이런 접근방식이 적용된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기본적으로 산업화 초기의 영국에서 노동계급의 형성에 주목하고 있지만 그 연구방식이나 서술방식이 사회경제적 구조의 분석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 그런 의존은 사회경제적 결정론에서 벗어나고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톰슨은 계급의 형성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구조화에 따라 외적 결정 조건으로 환원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그 결정 조건은 계급형성의 최소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구조적 조건에서 계급경험이 축적되고 사회적 관계의 맥락에서 긴장하고 갈등하는 동적인 과정으로서 계급의 형성을 드러내고 있다.

톰슨이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드러내고 있는 계급의 형성과정은 두 가지 계급관을 비판하는 데서 나온다. 첫번째로는 이른바 전통적 맑스주의적 계급개념인데, 이는 사실 맑스 자신이 제시한 개념이 아니라 후대에 곡해된 개념으로, 생산관계에서의 위치, 즉 생산수단과의 관계에서 구조적으로 자동결정되는 계급개념이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확립에 따라 계급의 위치와 주체성이 확보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계급 없는 계급투쟁’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역사적 진행과정은 ‘계급 투쟁’이 계급의 형성에 선행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두번째 계급 개념으로, 우파적 관점, 즉 구조기능주의적 계급이다. 이 관점은 정태적인 계급개념으로, 역사과정의 횡단면에서 파악된 정적인 사회구조 속의 한 위치와 그에 따른 기능과 역할이라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는 역사적 과정이라는 측면, 구조에 의하여 조건지어지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주체성으로 형성해나가는 계급의 동적인 움직임을 모조리 사상해버린 역사적 스냅사진만 보여준다. 그러한 횡단면에서는 계급의 주체적 형성을 조망할 지평이 설 자리가 없다.

톰슨은 계급을 ‘역사적 현상’이자 ‘사건(happening)’으로 본다. 그에 따르면 계급은 완결된 주체성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즉 사회경제적인 하부구조의 결정인에 의해서 완결된 동일성-주체성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계급은 먼저 역사적 관계의 시간적 장 속에 구조화되는 외적 조건에 반응하며 형성되어 간다. 그 과정은 동시에 계급의식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체성의 자기정립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톰슨의 계급개념은 실체론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론적인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계급갈등적 관계 속에서 계급주체성은 형성된다. 이러한 형성과정은 당대의 문화적 매개물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당대의 의미·가치체계, 저항의 문화적 전통 등 문화적 의미층을 통하여 계급의식은 주조된다. 사회경제적인 구조화의 결정인은 계급경험에 대한 최소한의 방향만을 지시할 뿐이다. 계급경험을 통과하면서 주체적으로 계급의식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계급이 자기를 만들면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계급은 출발이 아니라 결과인 것이다. 출발은 계급경험의 조건일 뿐이며, 계급의식으로 무장된 계급은 결과이면서 과정이다. 톰스의 표현에 따르면, 계급은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이요, 이런 이해관계나 저런 이해관계가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 사이의 마찰이요, 운동 자체, 열기, 뇌성과 같은 소음〉(하권 562쪽)이다.

잠언 16장 22절

Friday, March 28th, 2008

문화로서의 사치는 ‘인간’과 ‘인간적 삶’의 디자인이자, 계속 갱신되는 발명이다. 조악한 디자인의 삶은 그 자체가 징역이요, 고도로 섬세한 디자인의 삶은 그 자체가 축복이 되겠다. 불행하게도, 그 디자인을 판별해주는 심판관을 어디에서도 만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좋은 디자인을 볼 줄 아는 안목에 이르렀다면, 그 안목 즉 섬세한 사유의 사치는 이미 그 사치 자체가 최상의 축복이다.

그리고, 그 불행과 다행이 순환하지 않으니, 이 또한 지고의 축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