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집이 아주 오래된 옴팡집이다 보니 먼지가 많이 생긴다. 이불이건 옷이건 자주 털어야 한다. 흙집이니까 생태적이라서 다 좋을 것 같지만(그래서 이사왔지만), 물론 중요한 것들, 이를테면 몸의 건강과 생태성을 회복하는 데에 좋지만, 덜 중요하더라도 안 좋은 게 몇 가지 있다. 바로 먼지다. 먼지가 잘 생겨서 뭐든 자주 털어야 하고 자주 닦아야 하고 자주 쓸어야 한다. 세상사의 모든 선택에는 항상 반대급부가 있기 마련 아닌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내복을 입는다. 한겨울에는 추워서 입고 난방을 중단하는 늦은 봄에는 바깥보다 실내가 더 추워서 입는다. 내복 두 벌 가지고 빨아가며 번갈아 입는다. 입는 동안에도 당연히 자주 털어 입어야 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이부자리를 편다. 아이들에게도 잠잘 준비를 다 시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자, 이제 나도 잠자리에 들 차례다. 실내복을 벗어 옷걸이에 건다. 이제 위아래 내복차림이다. (내복을 입는 철이면 나는 팬츠를 입지 않는다.) 내복만 입은 채로 그냥 현관문을 열고 안마당으로 나간다. 골짜기 끝이라 위로는 꼭대기집 한 채가 있을 뿐이다. 그 집 앞 전봇대에 등이 하나 걸려 있으나 우리집 마당에서는 거리가 꽤 된다. 맑은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해도 여전히 골짜기의 어둠은 짙다.
나는 내복 윗도리·아랫도리를 모두 벗는다. 완전한 알몸이 된다. 차갑고 매서운 겨울 냉기가 온 살갗에 덤벼든다. 아직 남아 있는 든든한 체온의 보초병들이 그들의 공격을 감당한다. 보초병들의 방어 솜씨가 제법이다. 두 손으로 양쪽 끄트머리를 잡고 내복 윗도리·아랫도리를 힘껏 턴다. 적당히 털었으면 이제 나의 보초병들을 믿고 내복은 손에 들고, 안마당을 천천히 걸어나가 동네길을 벌거벗은 채로 성큼성큼 걸어본다. 신난다. 전봇대의 가로등 불빛을 만나면 잠깐 서서 알몸을 내려다본다. 동네길 한복판에서 쳐다보는 내 알몸은 낯설다. 그 낯설음에 감격한다. 집들은 띠엄띠엄 있고 시골 노인네들은 다 일찍 잠자리에 드니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벌거벗은 내 몸을 볼 사람은 전혀 없다. 혹시라도 어머니뻘인 시골아주머니들이 좀 보면 어떤가. 마주친다 하더라도 꾸벅 절하고 느긋하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초병들이 이제 밀리기 시작한다. 시퍼런 한겨울 냉기의 습격에 한 명씩 한 명씩 쓰러진다. 그들이 하나씩 하나씩 쓰러져 가는 동안, 나는 한겨울 밤 골짜기의 암흑 천지에서 알몸의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사치의 극한을 누린다. 조르바가 부럽지 않다. 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행복의 절정에서, 보초병들이 모두 전사한다. 알몸에서 진동의 신호가 깜박깜박한다. 걷던 길을 뒤돌아선다. 그리고 뛴다. 총알 같이 안마당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튀어든다. 손바닥으로 양쪽 어깨쭉지를 비빈다. 내복 바지에 다리를 꿴다. 이불 속에 파묻혀 열린 방문으로 나를 빼곰히 쳐다보는 아이들한테 자랑한다. “아빠, 내복만 입고 나갔다가 딸기벗고(벌거벗고)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