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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내 새 집

Monday, March 24th, 2008

 

유목과 은둔

 

의리(義理)가
낮은 샘가에 피묻은 채 머물고
온 허공에 수만 가지 꽃, 꽃들이
어지러이 피어
어찌 나갈까
저 먼 쓸쓸한 바다까지
가 마침내 내 두 아이를
만나 기어이
데리고 돌아올까
유목과 은둔의 집이여
오랜 내 새 집에.

( 김지하, 全文)

 

***

 

물론, 나의 <은둔과 유목>이, 김지하의 <유목과 은둔>에서 온 것은 아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이 서로 상관없이 태어났듯이. 김지하는 유목을 앞에 놓았고 나는 유목을 뒤에 놓았다. 유목이 앞에 있으면 불안하다. 나에게는, 유목의 수평적 날렵함은 은둔의 수직적 깊이에서 온다. 그 깊이의 하강에서 비로소 유목의 수평적 날렵함이 나비처럼 탄생한다. 정신의 자취인가? 몸의 기록인가? ”오랜 내 새 집”에 처박혀 나는 낡아가고 야위어간다. 마침내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갈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은둔과 유목’이다. ‘씌어지지 않을 자서전’.

나의 은둔을

Thursday, February 16th, 2006

서재 북창은 뒤꼍으로 났다. 겨울만 빼고는 언제나 열어놓는다. 허름한 헛간이 바로 보인다. 헛간 뒤로는 산자락이고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헛간에는 아직도 맷돌이며 가마솥이며 항아리며 옛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먼지를 뒤집어쓴 채 침묵하고 있다. 헛간 문턱 바로 아래에는 조그만 항아리를 묻고 고무 뚜껑을 덮어놓았다. 액귀를 쫓기 위해서 놓은 것이란다. 그것을 밟고 들어가야 하는지, 밟지 않고 피해 들어가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헷갈린다.

그 녀석은 헛간 뒤 큰 호도나무와 밤나무에서 지저귄다. 거기서 이 북창으로 서재 안에서 내가 하는 모든 짓이 다 보인다. 녀석이 방안에서 보내는 나의 하루 일상을 엿본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내 은둔의 자질구레한 내막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비밀과 숨은 이야기를 다 보아두었을 터이다. 나의 방심 전부를, 나의 알몸 전부를 꼼꼼히 살폈을 것이다.

나의 은둔이 녀석에게 얼마나 소음으로 들렸을까. 문명의 소란함으로 녀석의 주거공간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미안하다, 산비둘기야. 앞으로 잘할 테니 화내지 말아다오. 어디 가서 내 비밀을 발설하지 말아다오. 나의 은둔을 기억해두지 말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