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Tagged ‘해’

불멸

Sunday, April 6th, 2008

 

불멸

 

겸손은 아마 내 천성
그걸 그러나 스스로는 모르는 체
나는 항상 반쯤 드러내며 살아왔다
내가 가진 것의 반
또는 그보다도 적게.
모든 걸 아는 풀잎
모든 걸 아는 저 새들
모든 걸 아는 동물들
그리고 해와 달
만물이 항상
자기를 반쯤 드러내고 있듯이
나는 반쯤 드러내며 살고 있다
언제까지나
장차 내가 죽었을 때에도
그건 나를 반쯤 드러낸 모습일 터이니
그건 실로 죽은 게 아닐 것이다
나는 불멸이다.

(정현종, 全文)

 

***

 

열어놓은 창 밖에서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저 달도 내가 불멸임을 안단다. 밤마다 울어대는 개구리들도, 날씨가 따듯해지니 방안 구석구석에서 출몰하는 그리마들도, 부엌에서 날아다니다 파리채에 얻어맞아 죽어가는 파리도, 이틀에 한번씩 불어제끼는 골짜기 바람도, 물앵두나무 가지에서 트는 새 움도, 점심상에 올라온 뒤꼍의 나물도, 늦은 오후 허공에 떼지어 우글대는 하루살이들도, 쓰레기 태우고 바람에 날리는 재도, 오늘 다섯 통이나 떠온 샘물도, 희희낙낙하는 아이들의 얼굴도, 내가 불멸임을 안단다.
그래,
나도 안다, 내가
불멸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