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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이득재, 소나무, 2001

가족주의와 가족은 다르다. 문제는 가족이 아니라 가족‘주의’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는 없다. 시민 사회가 형성되지 않았다. 국가는 가족주의를 통해서 대리하여 민중을 지배한다. 이른바 ‘가국주의’다. 가족주의는 가부장제의 다른 이름이다. 결국 가부장제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와 가족이라는 양 극단 속에서 ‘사회’라는 장을 형성되는데 적극 기여하는 장애물이다. 사회적인 장에서 해결될 많은 문제들이 가족 안에서 가부장을 통해 닫혀진 채로 봉합된다. 국가가 해주어야 할 많은 서비스들이 오로지 가부장의 권위와 헌신을 통해 행사되고 국가는 모든 책임을 가부장에게 전가한다. 사회의 영역에서 모색되거나 논의되어야 할 모든 문제들을 국가는 가족주의에게 떠넘긴다. 시민 사회의 튼튼한 구성과 형성이 가족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본 토대가 된다. 그 바탕에서 ‘노마드적 극단’도 생산될 수 있지 않을까.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구성원으로 개인, 이것이 가족주의에서 벗어난 실존의 단위들이다. 타율적인 근대화―과연 근대화이긴 한가―를, 식민지를 경유한 타율적인 근대화를 통해 전통 사회의 모든 사회적 영역이라 할 사회적 공간이 다 붕괴되었다. 그러면서도 가부장적 체계는 온존된다. 해방후 신식민지 파쇼체제는 전통사회의 가부장적 체계를 온존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효율성과 개인주의라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핵심에 근본적으로는 장애물이라 할 수 있는 가족주의적 정서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재구성하여 가족주의를 공고화한다. 이를 통해서 국가는 시민 사회라는 장 위에 시민 사회에 제어되거나 통제되지 않고 가족주의를 통해서 국가가 제공해야 할, 사회가 맡아야 할 많은 부분들은 가족 단위로 떠 넘기고 그 안에서 봉합했다. 여성의 성적 억압, 가정 폭력, 생계 유지, 그리고 더 나아가 산업화되던 시기에는 육아의 모든 모든 문제들을 오로지 국가의 대리인인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 밑에서 ‘私的’으로 해결한다. 학연·지연을 비롯한 전형적인 한국적 고질병들은 거의 대부분 이 가족주의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가족주의는 해체되어야 한다. 그럼 가족 자체도 해체되어야 하는가? 시민 사회와 형성을 통해서 가족주의가 해체되어야 한다면 가족주의가 아닌 가족의 어떤 형태와 위상으로 사회적 장 속에 자리잡는가? 시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개인으로 산다는 것은 가족 자체를 해체하지 않고서도 가능한가? 가능하다. 가족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인 혈연을 기초로 하지만, 이건 단지 자연적 소여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국가의 대리 지배체제인 가족주의라는 견고한 틀이 형성되어 이 틀을 통해서 지배되는 메커니즘이 아닌 낱낱의 개인들, 주체적인 개인들, 이 단위들의 사회인 시민 사회를 통해서 국가 체제는 통제되어야 한다. 그래, ‘개인 독립 만세’라는 구호는 가족주의 해체를 위한 또다른 구호처럼 보인다.

새 주인

이미 넘기는 절차는 다 밟아서 남아 있는 일은 없다. 다시 방문할 일은 없었고 나와달라는 요청을 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넘긴 가게에 다시 들렸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낯익은 학교 교실이 나왔다. 새 주인이 교실의 담임선생인 것 같다. 나는 어느새 그 교실의 학생이 되어 내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렇긴 했어도 내가 평범한 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나는 곧 떠날 것임을 담임인 새 주인한테 이전에 알렸던 듯했다. 가방이었는지 짐이었는지 잔뜩 꾸려 들고 일어나, 순식간에 꽉 찬 교실의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뒷문 쪽으로 가까이 갔을 때 담임이 급하게 따라온다. 문을 열고 나가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며 기다린다. 나는 가게에서 쓰던 카드 시스템의 마스터 카드를 호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었다. 담임이자 새 주인은 나에게 그 카드의 명의를 이전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직 처리가 안 된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그 카드를 가지고 있는 한, 가게의 근본적인 주인은 여전히 나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아주 여유 있는 표정과 어조로 그 절차가 아주 복잡하다고 얘기해준다. 할테면 해보라는 태도로. 새 주인의 얼굴은 아주 낯익다. 누구의 얼굴인지는 아무리 애써도 떠오르지 않는다. 인상 좋고 예의 바른 어떤 정치인 얼굴 같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에서 자주 나오는 특정 정치인의 얼굴이 겹쳐지지는 않는다. 주인은 절차가 아무리 복잡해도 명의는 이전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을 했고, 나는 상의 윗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아쉬움을 느끼며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의 주소를 불러 주자 주인은 수첩에 꼼꼼히 적는다. 곁에는 무슨 자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키가 작고 조금 뚱뚱한 여자가 서 있다. 인상은 좋으나 내 편 같지는 않다. 주인과 내가 하는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둘 사이에 갈등이라도 있으면 중재하려는 듯이 주인과 내 얼굴을 쳐다 보고 있었다.

따로 또 같이 잘 사는 세상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전우익, 현암사, 2002(초판 1993)

전우익은 삶이 아픔이라고 말한다. 난 여태 삶이란 쾌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말하는 삶이란 실존적인 근본 조건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일상으로 구성된 삶이다. 어떤 삶이라도 좋다. 삶이란 근본적으로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것이면서도, 단순명쾌한 일이고 고통의 근거이면서도 고통을 초극하는 열반의 이중겹침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삶은, 생활은 쾌적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삶은 아픔이라니! 그래 아픔이다. 기관지 천식 때문에 가래와 기침이 괴롭혀서 아픔이고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아침마다 콧물이 질질 흘러나와서 아픔이다. 도대체 쾌적한 상태가 얼마만이라도 제대로 지속되어온 적이 있었던가. 몸이 아프다는 것, 기침이 나고 통증이 나면 이것을 그저 피하려고만 했다. 이것은 자연적인 신호가 아닌가. 몸이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서 자기평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신호가 아닌가. 이 신호를 인위적으로 제어·통제하려고만 하지 않았는가. 제대로 잘 앓아야 하지 않겠는가. 잘 아프자. 아픔은 피한다고 해서 아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아픔을 긍정하고 아픔의 신호에 귀기울여야 한다.